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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Oct 23. 2023

선택의 미로에 갇힌 후회하는 여행자

생각과 행동 사이의 적정거리를 찾습니다.

        

“도미 먹을 걸 그랬어~”

“우회전할 걸 그랬어~”     



나와 친구들 사이의 ‘후회 밈’이다. 후회가 되는 상황이 오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도미’와 ‘우회전’을 떠올린다. 어느 여름 동해에 놀러 갔을 때의 일이다. 우리는 도미와 우럭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우럭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던 나는 우럭을 먹자고 했고 친구들도 동의했다. 우럭을 받아 든 나는 바로 후회했다. 다른 테이블에서 주문한 도미가 더 맛있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7번 국도를 타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번 우회전할 기회가 있었다. 운전대를 잡고 있던 나는 망설이다가 기회를 놓쳤다. 고속도로 방향으로 진입할 우회전의 기회가 금방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왠 걸. 아무리 가도 직진이었다. 내 입에서 나온 말.      


“아까 우회전할 걸 그랬어~~!”     


     

친정엄마는 나를 행동대장이라고 불렀다. 내가 선동해서 가족을 이끌어야 우리는 여행을 가고 새로운 맛집을 찾아갈 수 있었다.      


나의 원가족은 모두 불안도가 높은 사람들이다. 다른 세 명과 나의 불안도는 그 결이 사뭇 다르다. 셋은 무언가를 했을 때 발생할 일에 대한 불안이 크다면 나는 그 무언가를 안 했을 때 발생할 일에 대한 불안이 크다.

      

내 생각과 행동의 간극이 밀리미터 단위라면 다른 세 명의 생각과 행동 사이는 수 미터는 떨어져 있다. 친정엄마는 나 없이 세 명만 살았다면 매번 생각만 하고 아무것도 안 하고 살았을 거라고 했다. 


기동력이 좋다는 말은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망설임 없이 추진한다는 뜻이다. 바꿔서 생각하면 충동적으로 행동한다는 의미가 된다.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 바로 실천에 옮긴다. (생각이 곧 행동이다)     


분명히 득을 보는 경우가 있다. 파격특가의 찬스를 잡는다거나 사람이 붐비지 않는 시간에 치고 빠질 때 기동력의 덕을 본다. 이런 기동력과 실천력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 여기 캐나다에 살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과 행동의 간극이 좁다는 것은 충동적인 행동을 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말이다. 내가 잘하지 못하는 말 중에 “생각 좀 해 볼게요” 가 있었다. 이 말을 하지 않고 덥석 물었다가 낭패를 본 적이 여러 번 있다.      


냉큼 하겠다고 했다가 생각해 보니 할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고 번복하는 민망한 일이나 모임에 참석하겠냐는 질문에 무조건 오케이를 외쳤다가 취소한 일은 민폐였다.      


먹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먹은 일, 살까 말까 하다가 사고 후회, 안 사고 후회한 일은 셀 수도 없을 지경이다.      


이런 사건들을 계기로 ‘일단 오케이’, ‘못 먹어도 고’ 스타일의 행동 패턴이 손바닥 뒤집듯 바뀌지는 않았다. 육아를 하면서도 일단 “안돼!”나 “그래!”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생각해 보니 그 반대로 대답했어야 하는 경우들이 부지기수였다. 전형적으로 일관성이 부족한 부모의 형태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적당한 대응을 하지 않고 즉각적인 반응을 할 경우도 후회가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미국의 코미디언 대니 케이는 그가 싫어했던 한 여성을 겨냥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그녀가 좋아하는 자세는
이성을 잃고 헤매는 것이고,
그녀가 좋아하는 운동은
성급하게 결론 내리는 것이다.*     


위대한 책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이것이 시스템 1의 작동방식에 적절한 설명이라고 한다. 사람은 살면서 어떤 방식이든 실수를 한다. 성급하게 내린 결론으로 손해를 수용해야 하는 경험은 누구나 있다. 때로는 성급한(기동성 있는) 결정이 많은 시간을 절감해주기도 한다. 빙빙 돌아가지 않고 지름길을 택하는 경우이다. 가끔 그 지름길이 가시밭길이어도 비용과 효용면에서 감수할 가치가 있을 때도 있다.      


시스템 1의 주요 특징 중에 내가 주의해야 하는 것

-거의 혹은 전혀 노력하지 않으며 자발적 통제 없이 자동적으로 신속히 작동한다.      


시스템 1의 주요 특징 중에 나에게 필요한 것

-적절한 훈련을 받으면 숙련된 대답을 하고 숙련된 직관을 발휘한다.      


우리는 멈추지 않고 후회의 장면에 마주한다. 


내가 그때 그 사람에게 연락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그때 그 사이트에서 결제버튼을 누르지 않았더라면, 내가 그때......     


다니엘 핑크의 <후회의 재발견>은 모든 후회하는 자들에게 후회를 합리화할 수 있는 위안을 주는 책이다. 핑크는 다각적인 시각으로 후회를 해석하고 적절한 대처법을 제시한다. 핑크는 후회를 성장에 대한 욕구로 승화시킬 것을 요구한다.      


자잘한 후회에는 항생제처럼 ‘적어도’ 더 나쁜 상황은 면했다고 생각하기.      


같은 실수를 친구나 가족이 했을 때 어떻게 대할 것인지 생각해 보기(바보라고 비난할 것인가/그럴 수도 있다고 위로해 줄 것인가).      


후회되는 일을 타인에게 털어놓기(후회의 경험이 감정의 영역에서 인지의 영역으로 옮겨오기 때문에 부담이 줄어든다).      


후회를 글로 남기는 것은 후회를 완화시킨다고 한다.      

     

그래서 쓰고 있다.      


최근에 공연 티켓을 정가의 두 배 가까운 금액에 구입한 사건이 있었다. 공홈에서 구입을 했더라면 비싸도 ‘정가’이다. 잘 알아보지 않고 티켓 구매 대행처에서 구입을 한 것이 화근이었다. 내가 구글을 조금만 더 스크롤 다운했다면, 비싼 것을 의심했다면, 즉 조금만 더 생각과 행동 사이의 간격을 벌렸다면 정가의 티켓을 샀을 것이다.      


괜스레 쫓기는 마음에 서둘러 티켓을 구입한 나를 질책했다. '세계 후회 설문조사'라는 것이 있다는데 거기에 참여해 볼까 생각도 했다. 만약 내 친구가 이렇게 부주의한 구입을 한 사실을 나에게 말한다면?   


"멍청하기는!! 너는 왜 하는 일마다 그 모양이냐?!"


대화가 끝난 즉시 차단당할 것이다.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지는 않은지. 가끔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너무나 무차별적이고 가혹하다. 나는 친구에게이렇게 말해 줄테다. 


"속상하겠네. 기왕 산 거 가서 재미지게 보고 와~!! 다음에 그만큼 득템을 하는 날이 오겠지~!!"     


 

   

윌리엄 제임스는 말했다.   


   

내 생각은 처음이자 마지막이며, 언제나 내 행동을 위한 것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가하는 감정적 고통을 예상하고 피하려 애쓰면서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 아주 철저하게 따져보거나 반대로 완전히 마음을 비우는 것은 후회로 자학하는 시간을 줄이게 해 준다. 


우리는 미로 속에 살고 있다. 늘 선택을 해야 하고 그 선택은 막다른 골목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목적지로 이어지기도 한다. 여정을 되새기는 마음으로 여행자의 사고방식을 가지라고 핑크는 말한다. 


미로 속을 여행하다가 결정의 순간이 왔을 대 살짝 간극을 벌이고 싶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모든 하나하나의 생각을 신중하게 하여 ‘했더라면’의 망령에 사로잡히는 일을 줄일 수 있기를 바란다.  




표지그림 : 앙리 루소, <피리부는 주술사>


*대니얼 카너먼, <생각에 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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