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작은 식당일기

브런치북_다시, 제주

by 후룩쥔장

"방송 보고 왔어요. 어제 방송에서 탤런트 그 누구냐, 예쁜 그분이 어찌나 맛있게도 드시던지 인터넷 찾아보고 바로 왔잖아요."

조용하던 바닷가앞 작은 버거집이 때 아니게 북적거립니다. 지은지 50년도 넘은 농가주택에 딸린 창고를 개조한 매장은 빵을 굽고 고기를 튀기고 제빙기가 돌아가는 열기와 소리로 뜨겁습니다.


제주에 재입도한지 2년째, 귤밭 매입을 통해 알게된 동네분은 임차인을 구하고 있던 삼춘댁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제주의 농가주택답게 안거리와 밖거리, 창고로 구성된 집은 밖거리에 혼자 살고 계신 주인아저씨외 드나드는 사람이 없어 많이 낙후되고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방과 창고마다 오래된 짐들이 빼곡했고 그중 대부분은 갖다버려야 할 쓰레기들이었으며 무엇보다 옛날 집이라 보일러가 들어오지 않았고 화장실도 밖에 따로 있어 우리가 들어와 살기에는 사실 엄두가 안 났습니다.

비와 바람을 막아줄 집이란 의미 외에는 구조문제도 그렇고 샷시와 지붕등 손봐야 할 곳이 한두곳이 아니었기에 처음 집을 보러 갔던 날 저는 시큰둥했습니다. 제주 농가주택의 감성은 있었지만, 농가주택을 개조하는 비용이 사실 집을 새로 짓는 비용과 맞먹는다는 걸 알고 있었고 게다가 고쳐봐야 저희 집이 아닌 이상 계속 살수도, 팔 수도 없을 것이기에 돈과 힘을 들인다는 것이 무의미하다 여겼기 때문입니다. 고쳐쓰는 조건으로 3년간 무상임대, 이후 2년은 년세를 내는 조건으로 년세도 꽤나 매력적인 금액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남편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집을 본순간 바로 사랑에 빠졌는지 고치는 일이 재미있을 것 같다며 눈을 빛냈습니다. 결국 저의 반대를 무릅쓰고 육지에서 온 친구와 직접 리모델링을 시작했습니다. 엄청난 양의 짐과 쓰레기들을 폐기물로 실어나르고 땅을 파고 수도관을 연결하고 정화조를 묻고 씽크대와 욕조를 들여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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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래된 낡은 돌창고를 개조하여 음식점 허가까지 받았습니다.

메뉴는 '수제버거'. 예전 잠실에서 운영했던 흑돼지 고로케를 빵 사이에 끼워넣고 야채를 얹은 흑돼지버거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습니다. 친구와 하는 동업이었고 애초부터 제가 관여했던 일이 아니었기에 저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장사도 잘 안되는 것 같은데 저까지 낄 필요는 더더욱 없겠다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버거가 방송에 소개된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방송국에서 매장에 와 직접 찍어간 것도 아니고, 연예인 매니저가 와서 사간 버거를 내보낼 꺼란 얘기에 저흰 듣고도 심드렁했습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세상에 공짜는 없고 특히 방송국이란 돈으로 움직인다는 나름의 신념아닌 신념을 갖고 있었기에 바닷가 앞 조용한 버거집을 아무 댓가없이 방송에 소개해줄 땐 스쳐 지나가는 0.5초짜리가 아닐까 예상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모처럼 모여 해당 프로그램을 본방사수하는 동안 남편과 저의 심장은 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예상을 뒤엎고 버거가 방송에 나간 시간은 꽤나 길었고 클로즈업된 그림과 자막 또한 꽤나 자세했습니다. 무엇보다 10년만에 임신하여 버거매니아가 되었다는 미소가 예쁜 연예인의 버거를 먹는 모습은 비싼 광고비를 주고 찍은 광고라 해도 그렇게까지 맛있게 먹지는 못할 정도였습니다. 우리집 버거인데 만든 우리가 봐도 먹고 싶을 만큼 방송은 더없이 만족스러웠습니다.

"와, 이건 바로 반응 오겠는걸?"

남편과 눈빛을 주고받으며 내일은 재료준비를 좀더 넉넉히 해야겠다 얘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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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부터 조용하던 매장은 밀려드는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습니다. 오픈 전부터 좁은 주차장은 만차가 되었고 사람들은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밀려드는 주문에 저와 남편, 남편의 친구까지 세 사람은 울리는 전화 받을 시간도 없이 땀을 뻘뻘 흘리며 움직이면서도 기다리는 이들에게 연달아 죄송하단 말을 해야만 했습니다. 예약은 커녕 대기자들도 너무 많아 버거외엔 다른 메뉴 주문을 중단했고 버거 주문마저 중간에 솔드아웃을 안내한 후 대기줄을 끊어야 했습니다.

당황스런 이틀이 지나고 재정비 차원에서 일단 3일 휴무를 내걸고 재정비를 했습니다. 주방의 동선도 점검하고 부족했던 식기들도 보충하고 재료도 넉넉히 준비한 후 재오픈을 했고 그렇게 그해 여름은 에어컨도 없는 주방에서 뜨겁게 불태웠습니다.

방송의 힘이란 생각보다 뜨거웠고 그 뜨거움은 생각보다 짧았습니다. 지난 10년간의 요식업 경험을 통해 이 뜨거움이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처음부터 했지만, 여름이 지나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손님은 급격히 줄기 시작했습니다. 추운 겨울이 되자 그 수는 더욱 줄었고 세명으로도 허덕였던 주방은 다시 두명으로 충분해졌습니다.


사실 음식에 있어 아이템 선정은 중요하고 이를 홍보할 마케팅이 그 다음으로 중요한데 그 여름 휘몰아쳤던 반응은 저희에게 주어진 큰 운이었다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 좋은 운 못지않게 이후 벌어진 여러 일들은 '호사다마'란 말이 절로 떠올려질 만큼 안 좋은 일들도 연달아 있었지만, 저희의 제주생활에 크나큰 변곡점이 된 사건인건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제주에서 음식점을 한다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제주의 장사는 6개월 장사'라는 말도 있듯 변수가 참 많기 때문입니다. 우선 가장 큰 요인은 변덕스런 날씨로 비와 바람이 많고 극성수기인 한여름에도 태풍이란 변수가 있고 겨울에는 흐리고 을씨년스런 날이 많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른 저녁부터 인적이 끊기고 배달하기에도 이동거리가 멀어 실질적으로 매출을 올릴수 있는 시간이 짧은데 비해 임대료는 비싼 편이며 소비인구가 관광객을 제외하면 적고 관광객도 유동적이기에 큰 매출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제주는 섬이기에 물류비가 비싸 식자재 가격이 육지에 비해 많이 들고 사람 구하기도 쉽지 않아 운영에도 어려움이 많습니다.

한편으론 육지처럼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문을 열어야 한다는 당연함 대신 짧은 시간만 운영해도 암묵적으로 허용되는 자유로움이 있고 아이템과 맛이 괜찮다면 위치에 상관없이 입소문날 확률이 높아 육지와는 또 다른 기회가 있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큰 욕심을 내려놓고 초조함 없이 버틸 여유가 있다면 소박하게 살아가는데 어려움은 없습니다. 저희 같은 경우는 워낙 한가지 일만 하기엔 지루함도 빨리 느끼고 다른 쪽에도 관심이 많아 이곳 도민들처럼 투잡, 쓰리잡을 해야하는 이곳이 체질적으로 잘 맞기도 합니다.

방송의 힘으로 육지 백화점 몇 곳에 가맹점을 내기도 하고 여러 시도도 해봤지만 가장 큰 힐링을 주는 귤밭을 포기할수 없어 그 겨울 저는 다시 귤밭으로 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