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가을은 많이 아팠다. 가을이면 늘 그랬듯이.
유달리 가을을 타는 내게 계절이 주는 참담함은 때론 무방비 상태에서의 예기치 않은 사고가 되어 뒷통수를 가격하곤 했다. 누굴 탓할수 없는 그것은 오롯이 스스로의 외로움과 처절함에서 비롯된 이상행동들로 가을이면 연례행사처럼 치뤄지는 사고들이었다.
올 가을은 다행히도 타인에게 누가 되지는 않는 선에서 나 자신과의 침잠과 그 안에서의 대화와 버둥거림과 번민과 몸서리 속에서 그렇게 지나가고 있다.
이번 가을에 내게 크나큰 위로가 되어준 분들에게 특별히 감사하고 싶어진다.
Special thanks to Rachmaninoff & Chet Baker
라흐마니노프의 그 서정성, 애잔함, 가슴아린 선율과
쳇 베이커의 쓸쓸한 청춘의 음색이 없었다면
이 가을, 아마도 난 또다시 충동적인 사고를 치고
그로 인해 몸서리치는 부끄럼의 후회를 반복했을지 모른다.
제주의 가을은 깊어지고
바람은 거침없이 불어대고
밤은 길어져 어둠은 빨리 찾아오고
생활이란 이름에 쪄들어 이 푸른 하늘과 바다를 소홀히 하는 날 또한 가끔 있으나
난 아직도 제주에 살고 있고
그 제주에서 여전히 제주앓이를 하며 그리워하고
긴긴밤이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를 듣고
쳇 베이커의 트럼펫을 들으며
그들의 감성과 애잔함, 형용할 수 없는 그리움에 전율하며
그렇게 전쟁과도 같은 이 가을을 보내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