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행복했던 시간

다시, 사랑_6

by 후룩쥔장

#1995년 캠퍼스 상경대


"오빠, 오랜만이야. 여기는 같은 우리 과 언니. 나보다 학번은 빠른데 작년에 휴학하고 올해 복학해서 우리랑 같은 3학년이야."


후배 C는 강의실로 들어서는 작은 키의 남자를 향해 손을 흔들며 그에게 그녀를 소개했다. 그는 몹시 왜소해 보이는 몸집과 작은 얼굴에 비해 본인에게는 조금 크다 싶은 트렌치코트를 입고 있었다.

"나 Y야. 야 근데 너는 공부도 안하는 얘가 왜 맨날 그 자식이랑 도서관에 가 있냐?"

요즘 또 다른 복학선배와 붙어다니는 후배C를 향해 장난스런 웃음을 흘리며 그는 후배를 놀리듯 바라봤다. 친화력이 좋았던 후배C는 복학한 남자선배들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냈고 그들의 대화는 스스럼이 없었다.

그러나 2학년을 마치고 휴학하여 이런저런 방황을 하다 올해 복학한 그녀는 후배가 말하는 선배들이 낯설었다. 그녀의 같은 과 동기들은 지난 2년 동안 그녀와 몰려다니며 술판을 벌이다 모두들 군대라는 곳에 가 있었다. 여자 동기라 해봐야 정원 100명에 다섯 명. 그 중에 한 명은 오랜 직장생활 후 뒤늦게 입학한 이십대 후반, 또 다른 한명은 삼수생으로 원했던 학교가 아니라는 이유로 학교에 시험때만 나오던 그리하여 이름대신 '주말드라마'로 불리던 일 인, 그리고 두 명은 재수생, 현역으로 입학한 사람은 그녀가 유일했다. 여자 동기들보다는 남자 동기들이 편했고 키득거리게 만드는 남사친들의 유머코드에 그녀는 금새 빠져들었다. 거의 매일 붙어다니며 놀던 동기들이 군대를 이유로 모두 떠난 캠퍼스는 휑했고 그녀 또한 그 캠퍼스를 잠시 떠남에 주저함이 없었다.

다시 복학한 캠퍼스는 낯설었고 그녀는 집과 학교, 과외 아르바이트만을 오가며 모처럼 꽤나 성실한 대학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 그녀 앞에서 썰렁한 농담을 던지며 떠들고 있는 처음 보는 그 선배가 그녀는 꽤나 실없이 느껴졌다. 게다가 동기들 중 유달리 경상도 남자들과는 잘 맞지 않았던 그녀에게 그 선배는 다름아닌 경상도 남자라 했다. 학교는 같이 다니더라도 별로 마주칠 일은 없을거라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오지랖 넓은 후배C는 두살 차이 나는 그녀의 언니가 아직 솔로라는 말에 친한 과 선배를 소개해주었고 소개팅이 잘 되어 그녀의 언니와 소개팅 선배, 그리고 그 선배의 친구들과 그녀는 함께 어울리는 일이 잦아졌다. 한창 때의 청춘이라 모두는 함께 모여 술을 마시고 서로 편을 나누어 볼링 게임을 하기도 했으며 직장인이었던 그녀 언니의 경제적 도움으로 콘도에도 놀러갔다. 서로의 호칭은 '오빠, 동생'이 되었고 짖꿎은 장난도 스스럼 없는 사이가 되었다. 그런 만남들이 이어지던 몇달 후, 그녀의 언니와 소개팅 선배는 헤어졌지만 그녀와 경상도 선배 Y는 커플이 되었다.






두 사람은 그녀 주변의 지인들이 놀랄 정도로 꽤나 가까운 캠퍼스 커플이 되었다.

수강신청도 함께 했고 당연히 밥도 함께 먹었으며 노래방도, 술집도, 비디오방도 그 어디든 꼭 붙어다녔다. 커플이 되면서 그녀의 행동반경은 Y의 중심으로 흘러갔다. Y의 친구들과 늘상 함께 어울렸으며 Y가 있는 잠실과 신천이 주 무대가 되었고, 방학이면 Y의 고향인 울산에도 함께 갔다. 전공 과목의 팀별 과제에서도 Y가 속한 팀에 그녀가 합류했으며 도서관 자리는 늘상 그의 옆자리가 되었다.


돈 없는 대학생이었던 그들은 가장 합리적인 데이트 코스를 개발했다.

과천 경마장은 그들이 모처럼 사치하는 곳으로 날 좋은 날이면 경마공원을 산책하고 말을 구경했으며, 가장 적은 베팅액인 100원부터 500원까지 그들이 점찍은 말들에게 베팅한 후 목이 터져라 경주마를 응원했다.

경마장 옆 미술관은 그들이 찾던 또 다른 단골코스였다. 서울대공원 역에서 동물원까지의 오르막길은 그들의 산책로였으며 입장료가 무료였던 미술관은 그들의 눈을 호강시켜 주었다. 동물원에서 대공원 입구 쪽으로 내려오는 길, 물이 흐르는 호수변 산책길에서 둘은 잔디밭에 벌렁 누워 워크맨의 이어폰을 한쪽씩 나눠끼고 하늘 위로 떠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음악을 듣곤 했다.

학교 앞 작은 분식집은 그들의 소박한 외식장소였다. 전철역으로 가는 길에 자리한 그 집엔 경사가 급한 계단을 올라가면 머리가 닿는 낮은 복층이 있었다. 둘은 그 곳으로 기어 올라가 라볶이를 시켜 함께 먹었고, 전철을 기다리며 500원짜리 월드콘으로 항상 입가심을 하곤 했다. 월드콘을 두개 사는 법은 없었다. 둘이 나눠먹기에 하나면 충분했기 때문이다. 500원짜리 동전 하나만 있으면 둘은 행복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음악을 그도 좋아했고, 숫자에 약한 그녀를 위해 그는 시험때면 문제를 뽑아 주기도 했다. 개봉하는 영화는 빠짐없이 보았고 둘은 항상 손을 꼭 잡고 다녔다.


졸업식이 있던 날, 그들을 축하해주기 위해 참석한 양가 어른들이 함께 점심을 먹게 된 건 그들에게 너무도 자연스런 현상이었다. 이미 각자의 집에서는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지방에서 올라오신 그의 부모님은 이참에 인사를 나누고 싶어하셨다. 어떤 약속이 오간 건 아니었지만 어른들을 위해 학교 근처 흔치 않은 한정식집을 수소문했고 졸업식이 끝난 후 그렇게 양쪽 어른들은 서로의 덕담 속에 화기애애한 식사를 하셨다.


졸업 전 먼저 취업이 된 쪽은 그녀였다. 처음 지원한 회사에 덜컥 합격이 되었다. 모두가 취업이 힘들다며 울상이던 때였다. 너무 쉽게 한 취업이기 때문이었을까? 그녀의 첫 직장생활은 6개월을 넘지 못했다. 생각과는 다른 사회생활에 그녀는 힘들어했고 그럴 때 항상 곁에서 위로하고 응원해 준 사람은 그였다. 그녀가 직장생활을 시작하고도 한참 후에 취업을 한 그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그녀에게 이제 직장생활은 자기가 할 터이니 그녀에게 꿈을 찾아가라 했다. 그래서 그녀는 5개월여간의 직장생활을 통해 모은 200만원을 들고 방송 아카데미에 등록했다. 방송작가를 꿈꾸던 그녀는 그라는 존재가 있어 어떤 것도 두렵지 않았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그의 회사가 있던 삼성동 무역센터 앞은 그들의 약속장소였다. 퇴근시간이 되면 그녀는 그 앞에서 그를 기다렸고 회사를 마친 그는 그녀가 기다리는 그 곳으로 웃으며 달려왔다. 둘은 손을 꼭 잡고 그가 이끄는 식당이나 술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못다한 하루의 이야기 꽃을 피웠다. 그녀의 집으로 향하는 버스의 막차시간이 되면 버스정류장에서 두 사람은 아쉬움에 몇 번이나 한숨을 쉰 후 마지못해 작별을 했다.

함께 지내던 그의 형 집에서 그가 독립하던 날, 그녀는 그가 새로 얻은 논현동의 오피스텔까지 짐 나르는 것을 도왔고 입주 기념으로 그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맥주로 건배를 했다.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이면 그의 방은 영화관이 되었다. 빔 프로젝터로 쏜 영상을 창가의 대형 스크린으로 관람하며 응원을 했고 좋아하는 영화가 개봉하는 날이면 슬리퍼를 끌고 집 앞 영화관에서 연달아 두편씩 영화를 관람하기도 했다.

술만 마시면 나오는 그녀 아버지의 주사로 아버지와 싸우고 집을 뛰쳐나온 그녀가 지하철 입구를 기어서 통과하고 한겨울 양말도 신지 않은 맨발에 슬리퍼로 찾아간 곳도 그의 오피스텔이었다.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안아주고 토닥여 재워준 사람도, 다음날 집으로 가는 차비를 두고 출근한 사람도 다름아닌 그였다.


그들이 결혼이란걸 한다고 했을 때, 참석했던 같은 과의 많은 선후배들은 때 이른 결혼 소식에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너무도 익숙한 둘의 모습에 그저 당연하게 박수를 쳤다. 결혼식 당일 이미 그녀의 뱃속에 5개월 된 아기가 자라고 있었다 해서 그 누구도 그 결혼이 갑작스럽다 하지 않았다. 임신 소식을 처음 듣고 공중전화로 그에게 전화를 건 그녀의 목소리에 근심이 가득했다면, 전화를 받은 그는 들뜬 목소리로 아직 결혼하지 않은 그녀의 언니를 똥차에 비유하며 잘됐다고 기뻐했다.

그들은 그녀가 살던 집 근처에 작고 오래된 아파트를 얻었다. 불러오는 배를 안고 그녀는 그와 함께 저녁마다 근처 공원을 산책했다. 재개발을 앞둔 낡고 오래된 아파트였지만 그곳에서 그들은 신혼을 꾸렸고 아이를 낳았으며 소박하게 백일잔치도 했다. 신혼부부답게 그곳에서 사랑도 하고 싸움도 하고 화해도 했다. 아이에게 그녀는 서툰 엄마였고 그는 자상한 아빠는 아니었지만 그들은 그런대로 잘 살 수 있을거라는 희망을 가졌다.

IMF가 터지고 모두가 힘겨울 때도 적은 월급으로도 버티던 그가 벤처의 막차를 탈 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그저 평범한 나이어린 부부였을 뿐이다. 단단히 여물지 않은 상태에서 벤처의 경험은 그의 내면에서 잠자던 한탕주의를 건드렸고 이후로 그들은 재개발된 아파트를 떠나 겨우 장만한 첫 집에서 1년도 살아보지 못한 채 부랴부랴 짐을 싸 서울 그의 형 식구가 살고 있는 광장동으로 이사를 해야했다. 그리고 그 이전까지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인생이 그들 앞에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