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랑_에필로그
이 이야기들은 저의 지난 경험들입니다.
남편과 다시 재결합한 지 벌써 10년이 되었네요. 미국으로 함께 떠났던 가족은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이민비자가 거절되어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수 많은 일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부부라면 누구나 겪는 소소한 일들이었을 겁니다. 미국에서 돌아와 신용불량자로 다시 일어서기까지의 지난했던 일들, 제주라는 낯선 곳에서의 또 다른 경험, 요식업에 발을 디디고 이후로 이어진 몇개의 사업 경험들까지. 워낙 불 같았던 우리 부부는 이후로도 끊임없이 다투고 화해하며 또 함께 일을 벌렸습니다.
물론 그 와중에 헤어지자는 이야기도 몇 번이나 있었지요. 아무도 없는 낯선 미국 땅에서 생각과는 너무 다른 환경에 부딪쳤을 때, 아마도 그와 저 누구든 가까운 가족이 있었다면 또 어떤 결정을 내렸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곳은 친인척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낯선 땅이었고 믿을 건 우리 가족밖에 없었지요. 제주도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번 헤어지는 게 어렵지 두번이 어렵겠느냐며 야멸차게 말했지만 그나 저 모두 아픔에 치를 떨던 예전처럼 다시 살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습니다.
다시 합친 이후로 딸아이의 동생을 낳고자 노력했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저희에겐 이 아이가 유일한가보다 체념했을 때, 둘째 아이가 생겼습니다. 열한살이라는 나이 차에도 큰 딸과 작은 딸은 두터운 자매애를 발휘하고 있습니다. 우려했던 큰 아이의 사춘기 또한 동생이 생김으로써, 또 워낙 성향 자체가 순한 아이다 보니 지난 시절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너무도 순탄하게 지나 지금은 고3이 되었네요.
남들보다 조금 일찍 겪은 저의 지난 경험을 누군가에게 내보인다는 것이 마치 알몸을 내보이는 것처럼 부끄럽고 겸연쩍게 느껴져 많이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글 쓰는 사람들이 그렇듯 저 역시도 누군가에게 인정받기보다는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그 느낌 때문에 글을 썼고, 한번 시작하니 더 이상은 미룰수 없다 싶어 끝까지 마칠수 있게 되었습니다. 언젠간 저의 지난 이야기들을 정리보겠다는 나름의 욕심을 이루기 위함도 있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모두가 고민하는 사랑과 결혼,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름하에 갈등하는 부분에 대해 제 지난 경험들이 조금의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누구에게나 남이었던 '그' 또는 '그녀'와 만나 가족을 이루고 함께 산다는 건 장밋빛 꽃길만은 아닐 것입니다. 밑바닥까지 증오하고 원망하고 내치고 싶던 순간들도 있을 것입니다.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해 결혼이란 걸 했어도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사건과 방황에 서로에 대한 신뢰를 잃고 나락으로 떨어져 굴러다니는 경험도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신을 믿는 사람은 아니지만 어쩌면 인생에는 그리도 에누리가 없던지요. 그래서 더하기, 빼기의 셈법보다는 그냥 아낌없이 주는 쪽을 택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적어도 아낌없이 사랑하는 순간 우리는 더 없이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간들을 다시 꺼내어 들추고 쑤셔대고 재단하는 며칠 동안 몸도 마음도 아팠습니다. 이미 오래전 일이라 아물었을 법도 한데 이 글을 쓰면서 매번 눈물을 쏟고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물론, 10년전 그때만큼 처절한 아픔은 아니었지만요. 지금 함께 살고 있는 큰 아이가 그때의 그 아이였던가 싶을 만큼 시간이 흘렀고 함께 사는 삶에 또 익숙해져 그때만큼 큰 아이에 대한 애틋함은 없습니다. 오히려 이제 여덟살이 된 작은 아이가 예전 큰아이 또래라 제가 쓴 글을 읽으면서 자꾸만 작은 아이에게 감정이입을 하며 더 가슴 아렸던 것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어느새 저보다 훌쩍 키가 자란 큰 아이를 보며 우리에게 이렇게 소중한 딸이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어려운 시간들을 버텨줘서 너무나 고맙다고요.
남편과는 다시 함께 산 이후로도 끊임없이 싸우고 화해하는 일들의 연속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알지요. 속상한 마음에 싸우고 난 후에도 이 사람은 어디 가지 않고 제 옆에 있어줄 사람이라는 걸요.
참 짧은 인생이지요. 서로 사랑만 하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랑만 하며 살기에도 우리네 인생이 너무 짧습니다.
-후룩쥔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