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공감을 이끌어 준 인형극
1999년 여름, 아주 눈부시게 화창한 날이었다.
작은 아들이 다녔던 학교의 선생님이자 친구이었던 패트리샤가 차 한잔 나누자고 하였다. 아주 특별한 인형극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알게 된 그녀는 나에게 함께 하자고 권했다. 당시 나는 인형극에 대한 이해도 짧았고, 나서서 인형극을 해볼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그녀는 참여하는 선생님들이 하나같이 경험이 풍부하고 내가 많이 배울 수 있는 매우 특별하고 깊이 있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적극 추천하였다.
그렇게 해서 나는 엉겁결에 인형극학교의 3년 과정을 밟게 되었다. 나를 제외한 열세 명 모두가 볼더 시와 주변 도시의 발도르프 유치원 선생님들이었고, 대부분 20여 년의 오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선생님들이 모두 학교에서 일을 하여 한 달에 한 번 토요일에 모여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배웠다. 그리고 여름 방학에는 몇 주씩 집중적으로 배웠다.
토요일 아침에 모이면 한 달 동안 각자 학교에서 공연했던 인형극 사례들을 발표했다. 생일을 맞은 아이들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인형극과 계절을 알려주는 인형(SeasonalFairy), 이야기를 들려주는 인형(Storytelling Puppet), 계절에 따라 아이들과 함께 만든 인형들을 보여 주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며 ‘새롭게 만나는 아이들과 부모들을 위한 인형극’ 따위의 주제로 숙제가 주어지면 다음 모임 때 각자 준비한 인형극을 공연하고 의견을 나누었다.
나는 패트리샤 선생님과 함께 아이들의 학교에서 인형극 공연을 했다. 특히 한국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던 패트리샤 선생님 덕분에 내가 좋아하는 한국 이야기들을 영어로 번역해 인형극을 준비할 수 있었다.
나는 모임 때마다 선생님들이 직접 만들어 온 아름다운 인형들에 푹 빠졌고, 다양한 시도를 멈추지 않는 선생님들의 노력에 늘 감동했다. 나는 그렇게 인형극의 세계에 들어갔다.
내가 미국에서 만난 아이들은 평소에 인형극 놀이를 많이 하고, 학교나 지역에서 주관하는 축제 때 인형극 공연을 자주 본다. 그런데 발도르프 인형극은 좀 특별하다. ‘생명체의 원형’이라는 요소를 사실적으로 적용하면서도 아름답게 만든 인형으로 속삭이듯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야기를 ‘읽어주는 것’과 ‘들려주는 것’은 다르다. 어른들이 이야기를 들려줄 때 아이들은 스스로 자기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만들 줄 알게 된다. 아이들은 귀를 쫑긋 세워 이야기에 집중하며 인형들의 움직임을 따라간다.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자기 자신만의 독특한 이미지를 만드는 힘을 길러주기 위함이다. 아이들이 이야기를 들으며 그 속에 푹 빠지는 순간 자연스럽게 듣는 힘이 길러진다.
아이들은 들은 이야기를 인형극이나 자유 놀이로 표현하면서 공감 능력을 키운다. 또한 인형의 움직임을 통해 이야기의 시작, 갈등, 위기, 행복한 결론에 이르는 과정 전체를 경험할 수 있다.
인형극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더욱 어려웠다. 막대 인형극, 손 인형극, 줄 인형극, 그림자 인형극 등 종류도 다양했다. 인형을 움직일 때에도 동물의 특징, 사람의 연령 따위 원형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생명력 있게 표현할 수 있었다. 잘 안될 때는 직접 몸으로 표현해 본 뒤 인형을 움직였다.
인형을 움직이는 사람들의 움직임과 동작이 물리적 활동, 영혼, 성격, 기질에 따른 다양한 인간들의 원형을 드러내도록 해야 했다.
어떻게 하면 인형을 더 생명력 있게 움직일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해야 재미있게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작품 하나하나에 정성을 쏟았다. 내가 이해한 만큼 인간의 본질, 기질, 운명에 대한 이해를 통해 예술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애썼다.
아름다운 인형극을 보면 ‘아!’ 하는 감탄과 함께 내 마음의 빗장이 스르륵 열리는 것을 체험했다. 그렇게 인형극을 보면서 "내 안의 나"를 발견하고, 내면 깊숙이 감추어 두었던 모습과 마주치기도 했다. 나는 인형극을 관람하며 내 안의 순수함과 만나고 때로는 희망을 발견하고 때로는 재미있는 미래상을 그려 보기도 했다.
한 번은 인형극 수업 가운데 선생님이 각자의 꿈을 머릿속에 그려보게 한 적이 있다. 자신의 희망과 꿈에 대해 생각하고 잠시 후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대부분 선생님들은 은퇴 후 부모 교육 상담사나 인형극을 통한 심리 치료사를 생각하고 있었다. 공동의 꿈도 있었다. 동화에 나오는 원형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협동으로 인형극 전용극장을 만드는 것이었다. 선생님들은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병원, 심리 상담 센터, 정신병원을 방문해 환자들과 함께 인형극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학교, 도서관, 서점뿐만 아니라 복잡한 거리에서도 일반 사람들을 위한 자원 공연도 했다.
나도 그때 난생처음으로 우리 아이들이 다녔던 학교의 여름 방학 날에 맞춰 ‘콩쥐팥쥐’ 인형극을 준비했다. 선생님 세 분과 함께 인형을 만들고 공연을 올리기까지 꼬박 석 달이 걸렸다. 등장인물과 기타 소재들을 인형으로 만들고 연습하느라 힘들었지만 스스로 많이 배운 시간이었다. 공연을 하기에 앞서 인형극 학교에서 먼저 선보였다. 선생님들이 많은 칭찬과 격려, 그리고 의견을 주었다. 그 가운데 인형극 선생님은 이 인형극을 1년 정도 계속할 것을 제안했다.
다른 이야기는 하지 말고 한 가지 이야기를 계속해서 연습하고 공연하면서 인형들의 움직임과 인형극 하는 사람들의 태도 따위 여러 면에서 사실성과 예술적 완성도를 높여 나갔으면 한다는 당부였다.
그 후로 인형극 공연을 준비하면서 인형 하나를 만드는 데 꼬박 하루가 걸리기도 했다. 인간의 원형이나 기질을 표현하기 위해 이리저리 궁리했다. 돌이켜 보면 그때 인형을 만드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특징을 곱씹어 볼 수 있다는 점이 나를 계속 나아가게 하는 힘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시작하게 된 인형극은 학교를 졸업하고 십여 년 넘게 다양한 인형극 공연으로 이어졌다. 10여 년 전에 보았던 한 인형극의 장면들은 지금도 내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아있다.
그 뒤 여러 학교에서 ‘콩쥐팥쥐’ '젊어지는 샘물' 인형극 등 우리 한국 동화를 공연하였다. 인형극의 아름다운 매력과 공감과 소통의 힘을 체험한 나날이었다.
한 번은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겨울 동지 축제에서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 이야기를 연극으로 공연하기도 했다.
인형극은 인형극 공연을 하는 사람과 관객이 함께 참여하여 호흡하며 소통하고 공감을 이끌어 주는 강렬한 힘이 있다. 그리고 인형극은 사람들의 마음에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게 해 주고, 인간 내면의 황폐함을 치유하는 약이 되기도 하고,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 종합 예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