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나코리 Sep 02. 2018

제발! 코칭(Coaching)을 흉내 내지 마라

누군가를 코칭하고 싶다면 명심해야 할 3가지

몇 해전 유병재 작가는 인생의 멘토 선택 방법에서 탁월한 관점을 제시한다. 멘토를 선택할  자신이 따라 하기 힘든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 최소한의 가이드가 되는 worst를 멘토로 삼는 것이다.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지, 죽어도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겠다.


나도 이런 멘토가 있다. 거북선 이야기에서도 한번 언급된 입사 첫 해의 팀장. (거북선은 누가 만들었을까?)


그는 재미있는 일화와 교훈을 내게 제법 선물해준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그와의 경험을 나열하면 책 한 권은 족히 넘는다. 그중에서도 근래에 학교, 회사, 가정 등 다양한 상황에서 강조되고 있는 '코칭'과 얽힌 이야기가 있으니, 이는 코칭을 코칭답게 활용하려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




코칭 배웠으니 내가 해줄게


어느 월요일 그는 지난주 직책자 교육에서 '코칭'이라는 것을 배웠다며, 다음의 메일을 직원들에게 보낸다.

 

10시부터 김과장, 10시 30분부터 나대리, 11시부터 임차장..회의실로 와.


무엇인가 차례대로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느낌이 아니던가. 코칭은 개인과 조직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수평적 파트너십이라는데, 이미 메일의 문장은 철저하게 '하대체'였다. 이런 메일을 받고 실제로 직원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와 ~ 드디어 코칭받는구나. 이 시간을 통해 나의 잠재력이 발현되겠군.


라는 벅찬 감정이었을까? 아니면

 

또 이상한 것이 시작되는군.


라며 불안감에 휩싸였을까. 같은 도구도 사용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그 영향력과 결과는 참 다르다. 칼이 치료의 도구가 되면서도 사람을 해치는 도구가 되는 것처럼, 그는 항상 새로운 것을 배우면 누군가를 찌를 칼로 사용하여 직원들을 불안하게 했다.

 


01 당신의 의도가 중요하다


코칭의 핵심은 코치가 보여주는 진실된 의도다. 코칭받는 사람은 코치가 진심으로 자신을 위한다는 의도가 느껴질 때 코치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상대방의 행동과 언어에서 상대의 의도를 느끼게 되는데, 코칭을 하겠다던 그 팀장의 진심은 팀원들에게 어떻게 느껴졌을까.


주위에 코칭을 배우지 않아도 평소의 삶과 언어가 코칭에 가까운 리더 L이 있다. 당연히 L 주위에는 따르는 사람이 많다. L의 의도를 느끼고 L과의 관계 또는 기대에 반응하고 싶은 자발적인 동기가 생기기 때문이다. 


반대로 코칭과 완전히 상반되는 일상을 살아가는 리더 K도 있다.  K는 코칭을 며칠 또는 몇 시간 동안 교육받고, 자신의 방식으로 코칭을 해석한 후 코칭한다고 말한다. 상대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의도는 전혀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직원들은 그 둘을 어떻게 이야기할까.


자기야, 내가 코칭 배웠는데 자기도 코칭해줄게.


부부끼리도 코칭이 가능하냐는 질문을 받는다. 굳이 그러지 말자. 이미 그 질문에서 '상대가 코칭이 필요합니다'라는 의도가 느껴질 때가 많다. 코칭이라 부르고 실제로는 상대를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려는 유도 신문일 때가 많다. 아이에게도 비슷한 것을 한다며 밥상머리에서 파출소 버전의 신문을 진행하기도 한다. 코칭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도 코칭받는 사람이어야 한다. 코칭의 효과는 코칭을 받는 사람이 준비가 되었을 때 극대화된다. 코치는 마음속 깊이 상대를 위하고 존중하는 선한 의도를 장착하고 기다리면 된다. 그것이 어느 날의 대화에서 상대를 도울 수 있는 최소한의 준비다.




질문 던지는 것이 코칭이잖아


그가 코칭 시간이라 부르는 그 시간이 되어 회의실로 불려 가면 나는 누명을 쓰고 취조를 받는 영화 속의 장면이 상상될 정도로 괴로웠다.


- 상반기 성과가 어떤 것 같아?
- 열심히 했지만, 목표보다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
- 왜 그랬을까?
- (목표가 너무 높아 의욕이 꺾였지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유통점들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 왜 그랬을까?
- (당신이 너무 개입하여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지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들도 동기부여가 부족했습니다.
- 왜 그랬을까?
- (팀의 리더가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했지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제 노력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 (그가 원하는 대답이 나왔는지 질문이 바뀐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 ... (이런 망할)


결국 나는 하지도 않은 그 범죄를 저질렀다고 거짓 자백하는 죄수처럼 '내 잘못이오'라고 말하고 나서야 그 방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02 기존의 관계를 확인하자


그가 시연하는 '왜 그랬을까' 신공은 꿈에서도 들릴 지경이었다. 5 Why의 중요성을 설파하며 계속 '왜 그랬을까'를 외쳤다. 물론 강력한 질문은 코칭 세션에서 상대를 돕는 중요한 도구가 맞다. 하지만 질문도 준비가 필요하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첫 번째는 일을 만들어 내는 사람. 두 번째는 남이 일으킨 일을 바라보는 사람. 세 번째는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조차도 모르는 사람. 너는 어떤 사람이 되겠니?


토크 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에게 영감이 되었다는 질문이다. 만약 이 질문을 했던 사람과 윈프리가 평소에 갈등이 있거나 심리적으로 불안감을 주던 사이였으면 윈프리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었을까? 진짜 싫었던 사람이 이런 질문을 했다면 윈프리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또 무슨 소리를 하려고 이러는 거야, 본론을 그냥 이야기하라고!


질문한 사람에게서 평소에 본받고 싶은 점이 하나도 없었다면, 이런 생각까지 들 수 있다.

 

너나 잘하라고, 너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잖아.


그래서 직장, 가정에의 코칭은 어렵다. 코치와 피코치의 관계이기 전에 피평가자-평가자의 관계이고, 배우자, 부모-자녀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이를 '이중관계'라 하는데 이중관계에서의 코칭은 더 많은 주의와 노력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전에 관계에서 쌓아 놓은 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 감정은 코치와 피코치라는 새로운 관계에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많은 경우 장애물이 되기 쉽다. 그러니 혹시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이에 코치-피코치의 관계가 시작된다면 느닷없는 질문부터 하지 말자. 질문보다는 상대와 그전에 쌓아둔 관계 통장의 잔고부터 확인하자. 혹시 마통 들고 적금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결과는 네가 만들어야지


지난번 코칭 때 A를 달성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결국 또 못했군.
왜 그랬을까?


그는 코칭 세션에서 나눴던 이야기로 직원들을 옭아맴으로써 코칭을 제대로 망쳤다. 약속한 것을 지키지 않았다는 식으로 직원들에게 죄책감을 주려는 심리게임을 계속했다. 코칭이 진행될수록 어떤 직원들은 코칭 세션에서 말을 아끼게 되고, 어떤 직원들은 그 시간에 적절한 대답을 연기하면서 아부하는 시간으로 활용했다. 마치 코칭을 통해 자신이 신내림을 받은 것처럼 찬양하는 직원도 있었다. 직책자의 개개인의 역량을 관리할 수 없는 조직은 코칭을 도입하면 안 된다. 좋은 리더들은 이미 자발적으로 공부해서 하고 있다. 이러한 자발적인 학습 능력조차도 리더의 조건이어야 하지 않을까. 



03 세션과 세션이 중요하다


다시 강조하면 코칭은 조직과 개인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수평적인 파트너십이다. 서로 간의 관계와 책임을 공유하고 돕는 방식이지 코치가 세션에서만 상대에게 관심을 갖고 책임감을 전가하는 것이 아니다. 코칭의 성공은 세션과 세션 사이를 어떻게 함께 하느냐에 달려 있다.   


다이어트 코치에게 보내려고요.


어느 날 저녁을 함께한 후배가 사진을 찍으면서 했던 말이다. 어쩌면 이것이 코치와 피코치의 관계가 아닐까. 코치는 세션과 세션 사이에 코칭을 받는 이가 어떤 방식으로 지난 세션에서 나눴던 내용을 실행하는지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일상에 스며들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같이 만들고 동일한 책임감을 가지고 함께 해줘야 한다. 실제로 조직의 장으로서 업무하면서 팀원 개개인을 코칭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자신 없으면 이상하게 하지 말고, 한다고 말하지도 말자. 그냥 하던 대로 하자.





수년이 지나 코칭을 배우고 그와의 취조 시간을 돌아보니 나름 재미가 있다. 지금은 비정기적으로 코칭 활동을 하는 코치가 되었지만, 코칭한다 이야기를 잘하지 않는다. 그만큼 코칭이라는 단어가 내게 여전히 무겁다. 코칭이라는 것은 코치가 명명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진심으로 코칭받았다고 느낄 때 코칭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 때야 비로소 그 시간을 만들어 준 누군가도 코치가 될 수 있다. 만약 누군가를 코칭한다면 명심해야 하지 않을까. '코칭'과 '코치'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는 받는 사람의 인정이 필요하다는 것.

이전 05화 아내는 지금도 모른다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그 남자의 두 집 살림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