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이 사진을 찍으면 좋은 5가지 이유
내 카메라의 가격이 얼마인지, 그동안 몇 번의 기변이 있었는지, 렌즈가 몇 개인지, 그것들이 얼마인지. 아내는 지금도 모른다. 단지 남편이 카메라의 프레임을 통해 일상의 소소한 기쁨을 누리고, 스트레스를 해소해 가고 있음을 어렴풋이 느끼는 것 같다. 내 방을 청소할 때도 카메라는 절대 만지지 않는 것을 보면 완벽한 타인은 아니지만 적당한 거리에서 나의 세계를 인정하고 있는 느낌이다.
인간은 자신이 이성적이라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환경과 충동의 영향을 받는다고 하였던가. 입사 첫해 같은 팀 선배의 '남자는 ??이지'라는 말도 안 되는 설득에 넘어가 덜컥 비싼 카메라를 구입했다. 돌이켜보면 무슨 생각이었는지 기억 조차 나지 않지만, 그동안 매년 수천번의 셔터를 누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사진과 가까워졌다. 혹시 새해를 맞아 새로운 변화를 탐색하고 있는 회사원이 있다면 다음의 5가지 이유와 함께 사진을 시작해보는 것이 어떤지 제안해 보고 싶다.
카메라의 렌즈는 인간의 눈과 같다. 셔터는 그 눈이 얼마나 뜨고 있을지를 결정한다. 너무 잠깐 눈을 뜨면 빛이 부족하고, 오래 뜨고 있으면 사진은 하얗게 된다. 빛의 양과 더불어 하나 더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프레임의 주인공이다. 인물이 주인공이 되어 프레임에 꽉 찰 때도 있지만, 때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아질 때도 있다. 그 모든 것을 내가 결정할 수 있다. 즉 사진이라는 세계는 셔터를 누르는 사람이 그 공간의 우선순위와 명암을 결정할 수 있다.
- 코리야, 개인과 조직의 비전이 일치했으면 좋겠다고? 하고 싶은 일만 하려면 월급을 받을 것이 아니라 놀이공원처럼 입장료를 내야지.
꼰대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직급과 월급이 상승할수록 원치 않은 일이 늘어나고 높은 사람들과 가까워질수록 물어봐서 해야 하는 일이 많아졌다. 오락가락하는 리더를 만날 때는 어디로 가는지도 잘 모르겠고 보고와 지시에 따라 일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목적지가 정해지지 않은 차를 타고 뒷좌석에 앉아 멀미를 하는 느낌이 자주 들었다.
운전자는 멀미를 하지 않는다.
마음이 답답할 때 카메라를 들고 거리를 거닐거나 가족들과 여행을 가면 사진의 작은 프레임에서 나만의 자유로움을 느꼈다. 카메라를 내 마음대로 드라이브하면서 일상의 답답함을 해소했다.
아빠! 그만 좀 찍어요!
리더들의 난폭운전에 내가 멀미하듯 나의 자유로운 사진 욕구에 아이들이 멀미를 느낄 때가 있다. 삶은 이렇게 물고 물리는 것이던가.
어릴 때부터 또는 출퇴근하면서 수도 없이 지나다녔던 길에는 많은 가게들과 건물들이 있었다.
- 자기야, 전등을 교체해야 할 것 같은데 퇴근길에 사 올 수 있어?
- 응? 그것을 어디에서 팔지? 동네에 그런 가게가 있었나?
특정한 일로 구매나 방문을 해 본 곳이 아니면 나는 매일 다니는 길의 풍경과 느낌을 모를 정도로 주위에 관심이 없었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은 계절의 변화를 느끼지 못합니다.
그동안 내 마음이 많이 아팠는데 몰랐던 것일까. 돌아보니 어느새 계절과 일상의 표현보다는 연말 조직개편, 신년 전략 워크숍, 하반기 추진사항 등 삶은 회사의 언어로 채워져 있었다. 출근은 끌려가는 소처럼 눈을 감았고, 퇴근은 쉬고 싶은 마음에 앞만 보느라 주위를 보지 못했나 보다.
첫 카메라를 구입했던 시기는 가을이었기에 처음 담았던 풍경은 꽃무릇이었다. 고창 선운사의 시원한 가을바람 속에 흔들리는 꽃무릇은 그전까지는 듣도 보도 못한 듣보잡 꽃이었지만 그해부터 가을만 되면 보고 싶은 꽃이 되었다. 알게 되면 보이는 법. 사계절 명소와 꽃, 그리고 나무들이 내게 보이면서 계절의 변화를 맞이하는 법을 배웠다.
풍경으로 꽉 차 있던 사진의 세계는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나를 인물의 세계로 이끌었다. 자유로움을 느끼는 빛과 구도를 넘어 피사체가 어떤 표정을 가지고 있고 어떤 시간과 빛에서 어떤 표정으로 빛나는지 알게 되었다. 더 좋은 모습을 담고 싶어 그 사람의 스타일부터 그 순간의 마음이 어떤지까지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다.
꽃무릇의 꽃말은 잎과 꽃이 피는 시기가 달라 '이룰 수 없는 사랑'이다. 살다 보면 찰나의 순간과 마음의 타이밍이 맞지 않을 때가 있다. "그때 좀 더 따뜻한 말을 해줄걸", "그 장소에 다시 가볼걸" 등의 미련이 남을 때가 있다. 어쩌면 사진은 이런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달래주는 도구가 아닐까.
사진에는 '핸드블러'라는 개념이 있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너무 떨었거나 빛이 부족했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물론 연출을 위해 일부러 흔들린 사진을 찍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 핸드블러의 결과물은 버려지게 된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다. 손이 떨리는 것처럼 만났을 때 힘이 너무 들어가면 행동이 어색하고 시간이 지루하여 서로 불편하게 된다. 또한 사진의 빛이 부족하듯 서로의 소통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회사일을 밝히느라 집을 비출 빛이 없는 때, 함께 있으면서도 스마트폰을 놓지 못할 때, 다 함께 오랜만에 식사를 하지만 TV를 끄지 못할 때.
정말 안타까운 것은 사진이 흔들렸다는 사실을 집에 와서 확인하고 아쉬워하는 것처럼 관계도 한참 후에야 깨닫고 다시 만들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미 그 순간의 그 사람은 지나가 버렸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핸드블러와 함께 자주 언급되는 감도(ISO)라는 개념이 있다. 카메라의 이미지 센서가 빛에 반응하는 것을 수치로 표현한 것인데, 촬영하는 순간과 피사체에 따라 그 값이 모두 다르다. 그래서 그때그때 여러 번 찍어보고 그 값을 결정한다. 어두우면 그 값을 올리고 너무 밝으면 그 값을 내린다. 많이 찍어보면 대충 환경만 보고도 감도를 예상할 수 있다.
관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누군가와의 소중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더 만나고 대화하면서 관계의 감도 조절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경험이 쌓이고 자연스럽게 손의 떨림도, 빛의 조절도 익숙해지는 시기가 온다. 그래서일까. 사진을 시작한 후 흔들린 사진은 정말 많았지만 흔들린 관계는 조금씩 줄어드는 것이.
- 삶은 어차피 비극 아닌가. 다 죽잖아.
- 늙어서 안 죽고 계속 불편하게 사는 것도 비극 아닌가.
- 결국 삶은 비극이구만. 남는 건 현재뿐인가.
철학적인 의도는 없었지만 생각 없이 던진 질문과 답에서 '왜 사는지'에 대한 물음은 어쩌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Why보다는 How에 대한 고민, 즉 내가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아간다면 '아 이래서 사는구나'라고 생각하는 순간이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행복의 최적 상태는 긍정적인 감정 상태와 부정적인 감정 상태의 3:1 비율이다. 긍정적인 감정 상태를 많이 경험하는 방법 중에 하나는 일상을 기록하는 것인데 사람들은 미래의 감정 상태를 현재의 감정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사소한 일을 기록하지 않는다. - “A ‘Present’ for the Future: The Unexpected Value of Rediscovery”
하버드대 연구진은 대학생들과 성인들에게 현재의 경험을 기록하게 하고 3개월 뒤에 열어보게 했다. 그 결과 특별할 것이라고 여겼던 기록은 3개월 뒤 별다른 감흥이 없었던 반면, 평범하다고 여겼던 기록은 훨씬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일상을 기록해도 다시 보지도 않을 것 같고, 다시 보더라도 그렇게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 예상한다. 하지만 어릴 적 수없이 지나다녔던 동네 사진을 서랍에서 우연히 발견하면 어떤 느낌이던가.
아내의 첫 해외여행은 말도 통하지 않는 방콕 공항에서 시작되었다. 에어컨에서 떨어지는 물을 맞으며 야간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어 비포장 도로를 4시간을 달려 앙코르 와트에 도착했다. 쇳물이 나오는 게스트하우스와 타는 듯한 태양 아래의 위험천만한 툭툭이, 처음 먹어보는 팟타이와 문이 잠기지 않는 카오산 로드의 숙소, 치앙마이의 길이 없는 트레킹과 꼭대기에서의 원주민 합숙 등이 이어지자 아내는 분노했다.
다행히 그 분노는 여행 마지막 3일간의 자쿠지가 있는 푸켓 여행으로 해소가 되었지만, 과연 지금 그녀는 그 당시의 사진을 보면 뭐라고 회상할까.
자기야, 그 여행이 이제까지 중에 최고였던 것 같아.
기록은 미래를 위한 선물임이 분명하다.
자신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는 것은 정서 발달과 청소년기 부모님과의 긍정적인 기능에 도움이 된다는 보고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 사진을 찍으면 직후에 잠시 보고 핸드폰을 바꾸거나 PC를 정리할 때 열어보게 된다. 물론 액자에 넣는 경우도 있지만 그 사진은 거의 바뀌지 않기 때문에 없는 것과 동일한 집의 벽지가 되어 버린다. 언제 찍은 지 기억도 나지 않는 가족사진이 한없이 걸려있을 때도 있다.
사진을 찍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연간 컬렉션을 만든다든지, 현수막을 만든다든지, 현상하고 프린트하여 자주 붙이고 버리는 일을 반복할 필요가 있다.
- 아빠! 엄마랑 이 사진은 어디 갔을 때야?
- 그것은 길도 없는 태국의 어떤 산을 낫으로 길을 만들면서 정상까지 간 사진이지.
- 엄마가 이거 웃는 거야?
- 엄마는 그날 원주민 숙소에서 울었어. ㅋㅋㅋ
매년 수백 장의 현상에 만만치 않은 비용과 앨범이 소모되고 있지만, 재미있는 회상과 대화로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이들이 아직 청소년기가 되지 않아 부모와의 긍정적인 기능을 증명할 수는 없지만, 이따금 부모님과의 여행 사진을 볼 때면 노부모의 목소리가 듣고 싶은 것은 왜일까.
카메라를 시작하던 시기에 10명이 넘는 직원들이 같은 사무실에 있었지만 그 선배의 말을 듣고 사진에 입문한 사람은 나뿐이다. 새해가 되었다고 해서 무엇인가 새롭게 시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개개인은 그렇게 쉽게 설득되어 움직이는 호락호락한 사람들이 아니다. ㅋㅋㅋ
흔히 하면 좋다고 알려진 독서, 운동, 메모도 쉽게 되지 않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메모가 좋은지 알아도 메모할 도구를 사지도 않는 사람, 샀지만 쓰지도 않는 사람, 사서 잠깐 쓰고 어디에 둔지도 모르는 사람 등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왜 그럴까. 다들 제 각각 환경이 달라서가 아닐까. 행동하기 힘든 환경에 있으면 더 많은 의지가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읽고 싶은 책이 있거나, 함께 운동하는 사람이 있거나, 예쁜 메모지가 있으면 좀 더 실행하기 수월하다. 그래서 사진에 입문하면 좋은 5가지 이유와 더불어 주의사항도 한 가지 당부하고 싶다.
꼭 찍고 싶은 피사체가 없으면 사진 입문에 신중할 것.
사진 입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피사체다.
저는 풍경 찍을 거라 괜찮아요.
미안하지만 풍경이 처음부터 그렇게 예쁘게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풍경 찍는다며 카메라를 샀다가 장롱에 모셔둔 사람을 많이 봤다. 본인이 정말 좋아서 찍고 싶은 피사체가 없으면 카메라는 3일 정도 쓰고 던져 놓는 새해 다이어리가 되기 쉽다. 그것도 아주 비싼 다이어리. 그래서 마지막으로 위의 문장에 한 줄 더 추가하고 싶다.
특히, 딸이 없다면 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음.
뭐.. 그래도,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