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맨스, 회사가 준 가장 큰 선물
소문으로 들었던 것보다는 생각이 있네.
우리 팀으로 온 J선배는 1달이 지나고 이런 이야기를 했다. 솔직한 이야기였는지, 할 이야기가 없어서 한 이야기인지 지금도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오만가지 생각과 연결되었다.
내가 그렇게 쓰레기로 소문이 나 있나?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나를 관리하던 두목 원숭이는 본인이 팀의 일을 다하는 것처럼 말하고 다니는 훌륭한 멘토였다.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은 J선배이니 이 두목 원숭이의 이야기는 다른 글을 참고하자. (제발! 코칭을 흉내 내지 마라)
그래서 당시 팀원의 대부분은 쓰레기 또는 저급 직원으로 평판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런 팀에 새로운 두목님과 J선배가 함께 왔다.
- 코리야, 이 정책은 왜 나온 것 같니?
- 이 동네에 매장을 낸다면 어디가 좋겠니?
- 무엇을 바꾸면 이 매장이 살아날 수 있을까?
J선배는 질문이 많았다. 그 질문은 매번 나를 당황하게 했다. 말도 안 되는 것만 시키고 강요했던 그 전 두목과는 또 다른 고통이었다. 하지만 재밌는 것은 J선배의 그다음 행동이었다. 그는 나의 이야기를 잘 듣고 자신의 의견을 피드백하고 그렇게 나눈 대화는 꼭 실행하려고 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니 내가 자주 하는 말이 생겼다.
한번 해보시죠. 될 것 같습니다.
어느 날은 하나밖에 없는 후배와 내가 일찍 퇴근하고 선배들은 잔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밤 9시 즈음 되었을까. 회사에서 짧은 문자가 왔다.
M과 코리는 T빌딩으로 지금 당장 오시오.
문자를 보고 있는데 후배 M에게 전화가 왔다.
- 아니 선배. 이 시간에 뭡니까. 아.. 진짜. 가실 거예요?
- 너는 그냥 무시해. 내가 갈게.
- 선배만 가면 제가 뭐가 돼요.
- ㅋㅋㅋ 지금 우리가 그 정도 분위기는 아니잖아. 걱정 마.
그렇게 합류한 나는 후배 몫까지 열심히 놀았다. 한참 술잔을 기울이고 이야기를 나눌 즈음 J선배가 내 옆으로 왔다. 그의 혀는 완전히 꼬여 있었다. ㅋㅋㅋ 그리고 M이 왜 오지 않았냐고 물었다.
왜 안 오겠습니까? 여기 이성친구가 있습니까? M이 좋아하는 맛집이 있습니까? 완전 늙은 아저씨들이 취해가지고 술만 억지로 먹이는데 누가 오고 싶겠습니까? 무슨 종친회도 아니고. 선배라면 오고 싶겠어요? ㅋㅋ
흠.. 그러네. 딸꾹.
서로 취해서 나눈 그날의 대화가 다시 기억이 난 것은 그다음 회식 장소를 정할 때였다. J선배가 M을 불렀다.
M, 우리 맨날 술만 먹잖아. 다른 것 좀 해보자. 네가 장소랑 뭐 할지 좀 정해봐. 쓸 수 있는 회식비는 충분하니까 걱정 말고.
일하던 나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어 J선배를 봤다. 그는 내게 찐한 윙크를 날렸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여 모든 것에 미숙했던 나는 그 1년 동안 J선배에게 일과 삶을 동시에 배웠다. 초반 2년은 지긋지긋한 곳이었는데, 새로운 두목님과 J선배가 있는 사무실은 출근하는 아침이 기다려질 정도로 좋은 곳이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 이번에는 내가 그 팀을 떠나게 되었다. 나는 그와 더 이상 일할 기회가 없다는 것이 너무 아쉬워 장문의 메일과 함께 마지막에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다시 만나면 저의 전투력은 장난이 아닐 거예요. 하지만 그때 선배의 전투력이 그대로라면 실망할 겁니다.
나의 장문의 메일에 그는 단 한 줄의 메일로 회신했다.
야! 이 삐~(ㅅ으로 시작하는 전문용어), 너 따위에게 그런 말 듣고 싶지 않아. 잘 지내고 또 보자.
그로부터 정확히 10년이 흘렀다. 그리고 우리 둘은 평일날 제주도로 향하는 배를 탔다. 비행기가 훨씬 저렴하고 빠른데도 일부러 목포까지 가는 버스를 탔다. 평일에 텅 빈 버스와 제주로 가는 배에서 두 아재는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좋은 호텔에서 조식도 먹고 일출을 보며 그동안 나누지 못한 삶과 일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선배, 우리 또 옵시다.
헤어지는 공항에서 내가 던진 이 한마디에 그는 짧게 대답하고 사라졌다.
야! 이 삐~~, 왜 이 좋은 곳을 너랑 또 와야 되냐.
그가 갑자기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