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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코리 Jul 16. 2019

로또보다 잘 맞는 복권

다가오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방법

지역 본부에서 일하던 어느 날, 사장님의 방문 일정이 알려지면서 인사 팀장은 난리법석을 떨었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나는 그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감도 없고 관심도 없었지만 며칠 후 인사팀장의 방문으로 상황은 급변했다.


이 팀에 밴드가 있다며?


당시 밴드에서 기타와 프로듀싱을 담당하던 K 선배는 애써 모른척하며


대일밴드는 여기  있습니다.


인사 팀장에게 뒤통수를 가격 당한 선배는 회의실로 끌려가더니 잠시 후 침통한 표정으로 돌아와 이야기를 이었다.


- 미안한데, 사장님과의 만찬에서 공연하게 될 것 같다.
- 아, 뭡니까. 안 된다고 했어야죠.
- 어쩔 수 없었어. 대신 연습실 대여비, 회식비 등은 지원해준대.
- 연습 시간은요?
- 일은 해야지.
- 행사까지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퇴근하고 매일 연습하라고요?


괜히 회사와 연결되는 것이 싫어서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조용히 연습하고 공연했던 회원들은 강력하게 항의했다. K 선배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며 회원들을 진정시키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했다.


S 차장 잘 있지? 오랜만이야. (중략) 다름이 아니라 사장님이 좋아하시는 노래나 노래방 18번이 뭐야?


통화를 듣던 나와 회원들의 표정은 점점 일그러졌고, 통화 끝나기가 무섭게 화가 난 원숭이들처럼 K 선배에게 달려들었다.


지금 그 곡을 하자고요?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사장님 말고 아무도 안 좋아할 것 같은데요.



나는 퇴근 후 K 선배와의 저녁 식사에서도 계속 투덜댔다. K 선배는 조용히 소주를 들이키며 내게 도움을 청했다.


코리야, 이건 어차피 우리가 하게 되었을 거야. 근데 내게 좋은 생각이 있다. 네가 필요해.


그렇게 시작된 갑작스러운 공연 준비는 매일 퇴근 후 자정까지 이어졌다. 매번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았던 연습실과 장비 대여료는 회사에서 지원받았고, 매일 밤 충분한 야식이 연습실로 배달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피곤해지긴 했지만, 좋아하는 음악을 하며 배가 따뜻하니 그 재미 점점 쏠쏠해졌다.


봐. 나만 믿고 따라와라. 더 좋은 일을 만들어 줄게.

행사가 다가올수록 우리는 사장님 18번 곡을 더욱 맹렬히 연습했다. 당일 행사장에서 참석자 전원이 뛰면서 떼창을 할 수 있도록 편곡도 하고 연주자들의 모션까지도 하나하나 세밀하게 준비했다.



드디어 행사 당일이 되었고, 우리는 혹시 충분히 놀지 못할까 봐 폭탄주를 연속으로 들이키고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앙코르곡까지 각본대로 뜨겁게 무대를 마친 후 사장님과 인사하는 시간이 되었을 때 본색을 드러냈다.


- 이렇게 훌륭한 밴드가 사내에 있었구먼. 동호회인가?
- 아, 아닙니다. 뜻이 맞는 직원들끼리 그냥 연습해서 준비했습니다.
- 그래? A 본부장, 어떻게 된 건가? 이런 밴드는 동호회로 만들어서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게.
- 아, 네. 저도 마침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 그래. 올해 진행 중인 행복한 일터 만들기와도 어울리니, 사내문화팀에도 알리고.


그리고 얼마  인사 팀장은 다시 우리 팀을 찾았다.


사장님 지시로 회사 내에 연습실과 악기를 지원하기로 했네.


지나친 아부라고 여겼던 일은 그렇게 우리를 널리 이롭게 하는 결과로 돌아왔고, 뜻하지 않게 복권 맞는 경험을 한 나는 이때부터 회사생활의 단순한 투덜이 스머프에서 참여하는 투덜이로 진화했다. 사내에서 진행되는 어떤 프로그램이든 참여 자격만 충족되면 무조건 신청했다. 프로 신청러가 되니 인맥이 넓어지고 더 많은 기회가 다가왔다.



회사 교육도 기존에 들었지만 강사님만 다르면 한번 더 신청하여 다른 점을 배우려 했다. 이미 사내 직원들을 대상으로 수차례 강의한 주제이지만 교육생으로 참여하게 되는 날에는 내 생각을 지우고 그날 오신 강사님 말씀이 진리인 것처럼 듣고 메모했다. 강의가 끝나면 정중하게 명함도 드리고 어떤 부분이 도움이 되고 좋았음을 매번 자세히 알렸다. 그던 어느 날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 안녕하세요, 리더님. 저 그때 뵈었던 K 대표입니다.
- 아, 안녕하세요. 잘 계시죠?
- 네. 혹시 다음 달 마지막 주 일정 어떠신가요?
- 어떤 일로..?
- H대학 교육이 있는데 과정이 많아서 함께할 강사님이 필요합니다.


이런 식으로 예측할 수 없이 한 번씩 맞는 복권 맛은 짜릿했다. 심리학자 스키너가 키우던 중독된 실험 쥐처럼 이 복권 맛을 보려고 더 자주 버튼을 두드렸다. 더 방만하게 참여하고 더 멀리 더 구석구석 복권 당첨의 씨를 뿌렸다. 10여 년 만에 어느 교육에서 같은 조가 된 입사 동기는 나를 이렇게 질타했다. 


아놔, 나코리 너무 열심히 해. 왜 갑자기 늙어서 오버하냐? 신입사원 때는 투덜대기만 하더니.


미안해. 얘들아. 내가 부담스럽지? 사실 이건 영업 비밀인데, 나.. 지금 개인영업 중이야. 또 복권 맞을 것 같아서 확률을 높이는 중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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