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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보다 잘 맞는 복권

다가오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방법

by 나코리

지역 본부에서 일하던 어느 날, 사장님의 방문 일정이 알려지면서 인사 팀장은 난리법석을 떨었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나는 그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감도 없고 관심도 없었지만 며칠 후 인사팀장의 방문으로 상황은 급변했다.


이 팀에 밴드가 있다며?


당시 밴드에서 기타와 프로듀싱을 담당하던 K 선배는 애써 모른척하며


대일밴드는 여기 있습니다.


인사 팀장에게 뒤통수를 가격 당한 선배는 회의실로 끌려가더니 잠시 후 침통한 표정으로 돌아와 이야기를 이었다.


- 미안한데, 사장님과의 만찬에서 공연하게 될 것 같다.
- 아, 뭡니까. 안 된다고 했어야죠.
- 어쩔 수 없었어. 대신 연습실 대여비, 회식비 등은 지원해준대.
- 연습 시간은요?
- 일은 해야지.
- 행사까지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퇴근하고 매일 연습하라고요?


괜히 회사와 연결되는 것이 싫어서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조용히 연습하고 공연했던 회원들은 강력하게 항의했다. K 선배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며 회원들을 진정시키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했다.


S 차장 잘 있지? 오랜만이야. (중략) 다름이 아니라 사장님이 좋아하시는 노래나 노래방 18번이 뭐야?


통화를 듣던 나와 회원들의 표정은 점점 일그러졌고, 통화 끝나기가 무섭게 화가 난 원숭이들처럼 K 선배에게 달려들었다.


지금 그 곡을 하자고요?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사장님 말고 아무도 안 좋아할 것 같은데요.



나는 퇴근 후 K 선배와의 저녁 식사에서도 계속 투덜댔다. K 선배는 조용히 소주를 들이키며 내게 도움을 청했다.


코리야, 이건 어차피 우리가 하게 되었을 거야. 근데 내게 좋은 생각이 있다. 네가 필요해.


그렇게 시작된 갑작스러운 공연 준비는 매일 퇴근 후 자정까지 이어졌다. 매번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았던 연습실과 장비 대여료는 회사에서 지원받았고, 매일 밤 충분한 야식이 연습실로 배달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피곤해지긴 했지만, 좋아하는 음악을 하며 배가 따뜻하니 그 재미는 점점 쏠쏠해졌다.


봐. 나만 믿고 따라와라. 더 좋은 일을 만들어 줄게.

행사가 다가올수록 우리는 사장님 18번 곡을 더욱 맹렬히 연습했다. 당일 행사장에서 참석자 전원이 뛰면서 떼창을 할 수 있도록 편곡도 하고 연주자들의 모션까지도 하나하나 세밀하게 준비했다.



드디어 행사 당일이 되었고, 우리는 혹시 충분히 놀지 못할까 봐 폭탄주를 연속으로 들이키고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앙코르곡까지 각본대로 뜨겁게 무대를 마친 후 사장님과 인사하는 시간이 되었을 때 본색을 드러냈다.


- 이렇게 훌륭한 밴드가 사내에 있었구먼. 동호회인가?
- 아, 아닙니다. 뜻이 맞는 직원들끼리 그냥 연습해서 준비했습니다.
- 그래? A 본부장, 어떻게 된 건가? 이런 밴드는 동호회로 만들어서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게.
- 아, 네. 저도 마침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 그래. 올해 진행 중인 행복한 일터 만들기와도 어울리니, 사내문화팀에도 알리고.


그리고 얼마 후 인사 팀장은 다시 우리 팀을 찾았다.


사장님 지시로 회사 내에 연습실과 악기를 지원하기로 했네.


지나친 아부라고 여겼던 일은 그렇게 우리를 널리 이롭게 하는 결과로 돌아왔고, 뜻하지 않게 복권 맞는 경험을 한 나는 이때부터 회사생활의 단순한 투덜이 스머프에서 참여하는 투덜이로 진화했다. 사내에서 진행되는 어떤 프로그램이든 참여 자격만 충족되면 무조건 신청했다. 프로 신청러가 되니 인맥이 넓어지고 더 많은 기회가 다가왔다.



회사 교육도 기존에 들었지만 강사님만 다르면 한번 더 신청하여 다른 점을 배우려 했다. 이미 사내 직원들을 대상으로 수차례 강의한 주제이지만 교육생으로 참여하게 되는 날에는 내 생각을 지우고 그날 오신 강사님 말씀이 진리인 것처럼 듣고 메모했다. 강의가 끝나면 정중하게 명함도 드리고 어떤 부분이 도움이 되고 좋았음을 매번 자세히 알렸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 안녕하세요, 리더님. 저 그때 뵈었던 K 대표입니다.
- 아, 안녕하세요. 잘 계시죠?
- 네. 혹시 다음 달 마지막 주 일정 어떠신가요?
- 어떤 일로..?
- H대학 교육이 있는데 과정이 많아서 함께할 강사님이 필요합니다.


이런 식으로 예측할 수 없이 한 번씩 맞는 복권 맛은 짜릿했다. 심리학자 스키너가 키우던 중독된 실험 쥐처럼 이 복권 맛을 보려고 더 자주 버튼을 두드렸다. 더 방만하게 참여하고 더 멀리 더 구석구석 복권 당첨의 씨를 뿌렸다. 10여 년 만에 어느 교육에서 같은 조가 된 입사 동기는 나를 이렇게 질타했다.


아놔, 나코리 너무 열심히 해. 왜 갑자기 늙어서 오버하냐? 신입사원 때는 투덜대기만 하더니.


미안해. 얘들아. 내가 부담스럽지? 사실 이건 영업 비밀인데, 나.. 지금 개인영업 중이야. 또 복권 맞을 것 같아서 확률을 높이는 중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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