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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코리 Aug 26. 2018

제발! 애자일(agile) 조직을 흉내 내지 마라

성공적인 애자일 조직 운영을 위한 3가지 조건

이 글은 애자일(agile) 조직을 이론적으로 연구한 학자나 조언하는 컨설팅 회사의 입장이 아닌, 그것을 실제로 지시받아서 실무를 해본 인사 및 조직 담당자 입장에서 기술한 내용임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어릴 적에 읽은 동화 중에 효자와 불효자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불효자가 욕을 먹다가 벤치마킹을 위해 효자에 집에 갑니다. 마침 효자는 부모님의 잠자리에 누워서 부모님이 주무시기 전에 자리를 따뜻하게 해 놓습니다. 이를 본 불효자는 집에 돌아간 후 부모님 자리에서 잠을 자고 또 욕을 먹습니다. (너무 어린 시절에 읽은 것이라 제 기억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애자일 조직을 섣불리 흉내를 내면 이런 불효자의 꼴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냥 기존대로 하는 것보다 더 큰 부작용을 낳을 수 있습니다. 혹시 애자일 조직을 고민하시는 인사 기획자나 회사가 있다면 참고 바랍니다.




00 애자일 조직이란


애자일은 기존의 업무 방식과는 많이 다르다고 합니다. 무엇이 다른지 한번 봅니다. (애자일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신 분들은 바로 01로 이동하시면 됩니다.)


공정과 도구보다 개인과 상호작용을
계획을 따르기보다 변화와 대응하기를
포괄적인 문서보다 작동하는 소프트웨어를
계약 협상보다는 고객과의 협력을


이는 애자일 소프트웨어 개발 선언인데 일종의 지향점 같은 것입니다. 벌써 한국 기업에 적용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조금만 더 구체적으로 봅니다.

애자일 조직은 다양한 사람들이 활발하게 의사소통합니다. 기존의 순차적인 waterfall 업무 프로세스가 아닌 점진적이고 반복적인 방식으로 변화에 적응합니다.



직원들은 업무에 대한 권한을 위임받고 주도적으로 일을 계획하고 수행합니다. 이러한 개인들이 각 각의 능력을 혼합하여 공동의 목표로 팀을 구성하고 이런 팀은 코칭과 퍼실리테이션으로 전진합니다. 평가는 관리자를 통한 상대평가가 아닌 다면 평가와 절대평가로 진행이 됩니다.

정리하면 애플이나 휴렛 패커드의 창업자들이 뒤뜰 차고에서 했던 것처럼 직원들이 업무에 대한 자율성과 권한을 가지고 팀이 되어, 끊임없는 상호작용으로 변화에 대응합니다. 듣기만 해도 너무 환상적이지 않습니까?

자 이제 그 설렘을 유지하시면서 "능동적이고 변화무쌍한 조직 구조 신설"이라는 지시와 함께 무너져 내린 저의 실화를 감상해주십시오. 몇 해 전 저는 누가 만든지도 모르는 '새로운 조직 구조 도입(안)'이라는 소설 같은 기획서를 받습니다. 그 일은 제게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도움이 된다"라는 큰 교훈을 남깁니다.





01 준비되지 않은 인프라


앞으로 조직을 이렇게 구성하고 프로젝트 중심으로 일한다.
함께 일하는 사람은 수시로 바뀔 수 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직원들은 안정감을 느낄까요? 불안감을 느낄까요? 회사는 직원들이 일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 열정을 불태운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여전히 평가와 승진으로 직원들을 동기부여합니다.

새로운 조직 시스템의 변화를 이야기했을 때, 직원들의 가장 많은 질문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럼 제 평가는 어떻게 되나요?


애자일 조직에 성공한 회사들은 HR도 함께 고민하고 인사고과에도 많은 변화를 주었지만, 제가 받은 기획서에는 프로젝트에 대한 평가와 구성원의 참여기간을 복잡하게 꼬아놓은 이상한 수식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훌륭한 직원들의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프로젝트를  안 하는 직원은 어떻게 되느냐, 프로젝트 평가의 공정성은 어떻게 되느냐, 상대평가인 것이냐, 팀 구성에서 직급의 편차가 쏠리면 어떻게 되느냐 등등.. 과연 저는 그 질문들에 대응할 수 있었을까요? 그렇다면 기획자는 그것에 대답할 수 있었을까요? 결국 이런 변화는 연말 평가에서 대혼란을 야기합니다.





조직 구조는 그림처럼 크게 변화되는데, 인사 및 의사결정 프로세스는 그대로 유지되면 안 하느니만 못한 기형적인 현상이 일어납니다. 절대 하면 안 됩니다.




02 준비되지 않은 직원들


평가와 조금 더 연결해 볼까요? 혹시 직원들이 연말 1회 또는 2회 평가를 받다 보면 자신의 팀장, 즉 관리자에게 관심이 쏠립니다. 애자일에서는 그 관리자가 변화될 수 있고, 상대평가받기로 한 팀원이 바뀔 수가 있는데, 기존의 평가 제도를 그대로 가져가면 어떤 현상이 나타날까요? ㅋㅋㅋㅋ 웃음만 나옵니다. 직원들도 혼란스러워합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A) 저의 관리자는 K 팀장인가요? L 팀장인가요?
B) 왜 이해를 못하나? 누구나 될 수 있다니까?
A) 그럼 연말 평가는 누가 하는데요?
B) 함께 일했던 팀장 중에 한 명이 하겠지.
A) 될 대로 되라는 식이군요. 제가 9개월 일한 A 팀장이 안 하고요?
B) 그럼 가장 오래 일했던 팀장이 하도록 해줄게. 선택제로 해줄까?
A) 네? 그게 말이 되나요? 이런 부분이 준비도 없이 제도가 도입되는 것이?
B) 자네는 일보다 평가만 생각하나? 회사가 야심 차게 변화하겠다는데.


결국 이런 VOC를 없애는 수단으로 특별승진을 내걸어서 연말에 몇 명이 승진을 합니다. 그렇게 되면 프로젝트에 참가하지 않고 일반 오퍼레이션 업무를 하는 직원들이 이렇게 마음먹습니다.


내년에는 무조건 이슈가 될만한 프로젝트로 들어가자!


이상한 현상은 계속됩니다.


관리자의 지시나 관리자와의 소통으로만 일해온 직원이 있다면 함께 협업하는 팀 구조에 적응을 못합니다. 어떻게 아웃풋을 공유하고 피드백하는지 어색해합니다. 팀 중심으로 바뀌었다고 말은 하는데 평가는 여전히 개인/상대 평가로 변화된 것이 없기에 더욱 혼란스러워합니다. 적절한 제도 도입을 위해서라면 이런 부분까지 미세하게 공을 많이 들여야 하는데, 졸속 시행에서 이것까지 기대할 수 있었을까요?




03 준비되지 않은 리더십


애자일 조직은 직원들이 오너십을 갖고 자기 주도적으로 일을 실행한다고 합니다. 어떤 권한이 있을까요? 제가 받은 기획서에서는 놀랍게도 이 부분이 철저히 언급조차도 안 되어 있었습니다. 그럼 어떤 방식으로 하게끔 되어 있었느냐? 그 전과 동일하게 조직의 구성부터 과제 선정, 진행 방향, 결과까지 모두 계층적으로 보고하고 승인받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일이 추가되었습니다. 이제 프로젝트 조직이니, 과거에는 그냥 하던 일도 과제라고 전산에 등록까지 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죽을래?)



애자일 조직을 도입한 회사들이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은 관리자들의 코칭 스킬입니다. 기존의 문화를 바꾸는 일의 핵심은 관리자들에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대부분의 임원이나 관리자들은 자신이 문제없다고 생각하거나, 겉으로만 반성 능력이 있는 것처럼 연기합니다. 

예를 들면, 모 기업에 코칭 리더십 교육에 갔을 때입니다. 그 회사의 임원분과 잠시 대화를 나누면서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분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렇지, 요즘 시대에는 그런 능력이 필요한데, 우리 팀장들이 그런 능력이 없어.' 그리고 그 임원분은 바쁘시다며 교육에 오지 않으셨어요. 그때는 강사비 때문에 말씀은 못 드렸지만, '제발 자신부터 챙기세요'




과거에 경로의존성에 대한 EBS 지식채널의 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2,000년 전의 로마 전차의 폭이 우주선의 폭에 영향을 줬다는 내용이었죠. 그만큼 무엇인가를 변화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애자일 조직으로의 변화는 많은 사람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제도의 도입보다 필요한 인프라와 구성원의 준비가 더욱 치밀해야 합니다. '아 이렇게 조직을 구성하는 거라고? 그럼 그렇게 구성해봐?'라고 하는 식의 무책임한 시행은 애자일 manifesto부터 벗어난 것입니다. '애자일 몰라? 일단 시행하고 변화에 대응하는 거잖아. 일단 시행하고 보완하자.' 이런 이야기 들을 때마다 학년별로 다른 한국의 입시제도가 떠오릅니다.

피터의 법칙에 의하면, 관료화된 조직에서 구성원은 무능을 증명하는 위치까지 승진하려 한다고 합니다. 그런 직원들로 구성된 조직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관료화된 조직은 그 조직의 무능함을 증명하기 위해 계속 헛발질을 하는 것 같습니다. 이제 그 이상한 헛발질... 그만해야 하지 않을까요? 무능력은 이미 충분히 증명된 것 같은데. 직원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말을 하지 않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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