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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코리 Jan 22. 2019

제발! 실패를 장려한다고 말하지 마라

신사업의 장애물이 되는 세 가지 조직 문화

최근에 뉴스를 보면 실패와 도전을 장려한다는 기업이 유독 많아졌습니다. 지난가을에는 광화문 광장에서 '실패박람회'까지 열렸지요. 왜 이렇게 갑자기 '실패'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을까요? 과거에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최근에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을까요? 아니면, 실패가 두려워서 도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까요? 또는, 새로운 도전이 절실하게 필요할 만큼 기존의 업(業)에서 한계를 느끼는 것일까요?


그만큼 많은 회사들이 기존의 사업에서 매출의 한계에 직면해 있으며,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생각 봅니다. 과거에는 이런 경우에 따라 하기 좋은 치마킹 사례를 찾아 'Fast Follower 전략'으로 어떻게든 생존이 가능했지요. 해외에서 먹힌다는 상품을 빠르고 비슷하게 설계한 후 밤을 새워 더 정교하게 만들어 시장에 내놓았지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에어비앤비, 우버, 넷플릭스 등 특정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플랫폼이라는 과거에 없던 형태의 기업들이 등장합니다. 어떻게 따라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언어와 문화 장벽 때문에 해외 진출도 쉽지 않습니다. 심지어 규모의 경제로 해외 기업들이 직접 국내 진입까지 노리고 있으니 그 위기감은 그 어느 때보다 더해지고 있지요. 과거처럼 비슷하게 국내용을 만들려는 의도로 거액을 투자했다가 오히려 손해를 보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새롭게 도전하십시오!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할 시점이 된 것 같기도 하고, 간절하게 필요한 시점이 된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과거의 시스템에서 갑작스러운 구호나 캠페인만으로 변화가 가능할까요? 예전에 실리콘 벨리를 경험한 직원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 왜 이렇게 한국 기업에서 자주 오는지 모르겠어요.
- 배우고 싶어서 오는 것이 아닐까?
- 배울 수 있을까요? 문화와 가치관이 다른데, 방법만 배운다고 될까요.


분명 일리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예전에 '애자일'에 대한 에서도 다뤘지만, 무엇이든 잘못 따라 하면 배우기는커녕 조직에 큰 혼란과 부담만 남기기도 합니다. (제발! 애자일(agile) 조직을 흉내 내지 마라)


우리 회사는 왜 이렇게 시도하는 신사업마다 잘 안되지?


혹시 조직 내에 이런 이야기가 자주 들린다면 다음의 세 가지를 참고하여 내부부터 돌아보면 어떨까요. 고민하시는 분들께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01 누가 의사 결정해야 할까


- 우리 집도 유튜브 시작해 보면 어떨까?
- 좋아요! 아빠!! 액체 괴물 만들기부터 해요.
- 액체 괴물?


책이나 영어, 수학 관련 자료를 생각하고 있었던 저는 딸아이의 말에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런 것을 누가 보겠어?라는 생각에 유튜브에서 '액체 괴물'을 검색했지요. 이게 웬걸? 수백만을 넘는 엄청난 조회수를 목격하고 깜짝 놀라게 됩니다. 영어, 수학도 검색해봤지만, 액체 괴물에 비하면 말하기도 부끄러운 조회수더군요. (물론, 조회수가 반드시 가치를 증명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리고 어느 날 고등학생 조카의 이야기를 아내에게서 듣습니다.


- 은유가 봄부터 유튜브를 시작했대.
- 아 그래? 요즘 고등학생들이 유튜버가 꿈이라던데, 은유도 시작했네.
- 근데 방송 내용이 특이해.
- 뭔데?
- 그냥 같이 공부를 해. 아무런 이야기 없이.
- 뭐? 그런 것을 누가 봐?
- 6개월 정도 되었는데 구독자가 1만 넘었대.
- 뭐? 진짜?


아니나 다를까 김은유 채널에 들어가 보니 정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공부만 하는 영상이 계속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엄청난 공감 댓글은 물론이고 매니저까지 있더군요. 저는 액체 괴물 이후 다시 한번 넋이 나갔습니다. ㅋ 얼마 후 김은유 채널은 뉴스에도 소개되더군요.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드려보고 싶습니다. 만약 여러분의 회사가 자율주행 버스 사업을 시작한다면 누구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맞을까요? 어릴 적에 버스 안내원을 경험하고 지금은 고급 세단만 타는 임원들의 의견일까요? 아니면 매일 지옥철과 만원 버스를 경험하는 직원들의 의견일까요?


당연히 대외적으로는 직원들의 의견이 중요하다며, 많은 기업들이 임파워먼트라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물론 그중에는 직원들의 의견을 듣는 조직도 있겠지만 실제로 최종 의사결정은 어떻게 되고 있을까요? 혹시 모르겠습니다. 잘되고 있는 조직들이 있을지. 주위에 직장인들이 있으면 한번 물어봐주세요. 신사업에 간절하다면 이 부분부터 먼저 확인해보면 좋겠습니다.


이상하게도 꾸준히 실적이 오르면 조직은 경직된다. 이른바 대기업병이다. 창업 당시의 위기감이나 역동성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무기력에 빠져 발전이 없는 상태가 된다. 불필요한 결재 도장만 계속 늘어난다.
- 기무라 나오노리, 도쿄 글로비스 경영대학원 교수





02 어떤 투자가 맞을까


아빠, 저도 형들처럼 새로운 사업을 하고 싶습니다.


아들이 5명인 20억 자산가 S 씨는 각 아들들에게 4억씩 투자합니다. '얼마 벌 수 있겠니'라며 사업 아이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5명 중에 한 명은 터지겠지'라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나눠줍니다. 그중 셋째가 명동에서 새로운 가게를 오픈하여 신바람 나게 장사를 시작한 지 3개월 즈음, 또 다른 20억 자산가 K의 아들이 같은 업종으로 명동에 진입한다는 소문이 납니다. 


K에게는 아들이 한 명이라 20억이 모두 그 가게에 투자되었다고 하네요. 오랜만에 만난 S 씨 셋째 아들의 얼굴이 죽상입니다.


상품을 차별화하고 열정을 다해봐!

 

어렵게 꺼낸 S 씨의 조언을 셋째 아들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 느낌입니다. 도리어 '아버지가 한번 해보세요'라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몇 개월 후 명절에 모인 다섯 아들의 표정이 모두 좋지 않습니다. K의 아들 사업은 대박을 쳐서 다른 곳에 추가 출점을 고려 중이라고 하네요.



몇 년 전부터 미래를 예측할 수 없으니 전략 수립이 무의미하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 구체적인 중장기 전략을 수립하지 않고 사업을 우후죽순 진행하는 회사들이 나타납니다. 각 사업단위의 매출 등의 목표만 있지 전체가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한 그림이 공유되지 않는 것이지요. 사업별 우선순위도 불투명합니다. 유연함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보면 어디 하나 대박 나기만을 바라는 막연한 생각이 아닐까요.

 

아버지, 사업이 너무 힘듭니다. 추가적인 투자 안될까요?

 

그렇다고 힘들다고 하는 사업을 정리하지도 못합니다. 힘들어하는 아들을 챙기듯 관련 임원들과 직책자들의 자리를 한 번에 없애는 것도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것이지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는 알고 있는 속담이지만, 실제로 피하지 못하는 경우가 이런 것이 아닐까요.





03 고급진 화살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회사일을 하다 보면 이런 상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때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의 조선입니다. 일본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서양의 상인들을 통해 총포를 가져와 활용하고 있었지요. 하지만 조선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올해 목표는 화살 100만 생산이다.


그리고 연말이 되어 서로 이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 이야~ 너 혼자서 화살 1만 개를 만들었어? 대단한데! 승진!
- 이거 화살이 너무 고급진데 ~ 대단한 기술이야! 평가 최상!


그리고 전쟁이 일어납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인간은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습관적으로 익숙한 판단을 하고 합리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를 찾는다고 하지요. 그런 사람들이 모인 집단은 더욱 조직적인 습관을 만들어냅니다. 고착화된 습관을 바꾸기 위해서는 절체절명의 위기가 느껴져야 하는데 이는 혼자 있을 때보다 집단으로 있을 때 더욱 느끼기가 어렵지요. 그래서 좋은 사례를 가져오더라도 습관적인 과거 방식으로 왜곡하여 실행한 후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 아, 이것은 국내 문화와 맞지 않네요.
- 우리 회사나 분야에 적용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군요.



정부에서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하고 성공기업들의 자율적인 일 문화가 공유되면서, 급속도로 많은 기업에 영향을 끼쳤지만, 여전히 이런 이야기를 하는 직책자가 많습니다.


창의적인 문화 좋은데.. 아웃풋은 언제 내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직책자가 생각하는 아웃풋의 정의는 무엇일까요? 1970년대 농업처럼 해가 뜨기 전에 밭에 나가 날이 져도 돌아오지 않는 농업적 근면성일까요?


상대적으로 덩치가 있는 기업들은 완전히 새로운 상품과 시장을 만들어본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에 스타트업이나 벤처캐피털의 대표들을 섭외하여 노하우를 듣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 스타트업 평가 방식 좋은데.. 기존 사업을 하는 직원들은 어떻게 해?
- 그냥 올해 말 성과를 보고 승진이나 평가 TO 정도 더 주면 어때?


하던 방식을 그대로 하거나 아주 조금 바꾼 후 큰 변화인 것처럼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직책자들이 있지요. 그들은 현황을 알려주는 지표를 정리하고 고급진 보고서를 만듭니다. 승진에 목마른 죄 없는 직원들을 활용해 밤늦게까지 고급진 화살을 만드는 것이지요. 그런 보고서들이 회사 성과에 어떻게 연결되는지 본인들도 설명을 잘 못합니다. 그냥 그것을 고민과 열정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는 신사업이 왜 안 될까 고민하면서 여전히 보고서에 집착합니다. 꼭 시험 보러 간 아들의 좋은 결과를 위해 밥도 안 먹고 기도하는 어머님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지요.


내가 그렇게 정성을 다했는데, 시험에 떨어지다니!

광기란 같은 일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 아인슈타인





예전에 김제동씨가 세바시에서 우리는 불안해하는 조상들의 후손이기에 불안한 것은 당연하다고 했습니다. 불안하지 않은 종들은 궁금해서 가봤다가 이미 고 후손을 남길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지요. 회사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 혹시 주말에도 본부장님이 나를 찾으실지도 몰라.
- 내일 아침에 이 자료를 찾으실지도 몰라.
- 내가 지금 일찍 가면 열정이 없다고 생각하실지도 몰라.
- 휴가를 사용하면 노력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실지도 몰라.


회사에는 의외로 이런 불안으로 생존한 종들이 꽤 많이 승진하고 의사 결정할 수 있는 자리에 올라갑니다. 이런 분들은 어떤 의사결정을 할까요?


많이 알려진 통계학 이론 중에 1종 오류, 2종 오류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완벽하게 만든 제품을 불완전하다고 판정하면 1종 오류가 됩니다. 반대로 불완전한 제품을 완벽하다고 판정하면 2종 오류가 되지요. 회사에서 1종 오류가 발생하면 단순히 기회를 놓치게 되지만, 2종 오류를 발생시키면 기업 이미지부터 금전적 피해까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불안으로 생존한 종들은 어떤 의사결정을 많이 하게 될까요? 위험을 무릅쓰고 2종 오류가 발생할 수 있는 일을 할까요?


혹시 국내 기업에 먼저 제안된 아이디어가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해외로 간 후 대박이 났다는 이야기를 들어 보신 적 있나요? 어떤 콘텐츠가 기존 기업에 먼저 제안되었다가 거절당하고 신생 기업으로 가 대박 난 이야기를 한 번쯤은 들으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1종 오류는 발생하더라도 기회비용을 정확하게 측정하기가 어렵고 복잡한 의사결정을 통해 책임이 분산되어 있으니 흐지부지 넘어갈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불안한 종들에게는 정말 좋은 안전한 선택이지요.



또한 이 분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는 회사는 성공 사례를 되게 좋아합니다. 성공 사례는 자신들이 갖고 있는 불안감을 낮춰주고 잘 되지 않았을 때도 내부로 화살을 돌릴 수 있습니다. 원래 좋은 것인데 내부 수준이 따라주지 않은 것이지, 그것을 무작정 도입한 그들의 잘못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불안한 종들은 자신들과 유사한 종들을 후계자로 양성합니다. 비슷하게 안정적이며 자신의 한마디에도 벌벌 떠는 후배를 선호하지요. 그렇지 않은 후배는 자신이 정의하는 아웃풋에 맞지 않거나 본인의 커리어에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다양한 생각이 중요한데, 왜 이렇게 우리는 항상 비슷한 마음인 거지? 우리가 한마음 한뜻이라 좋긴 한데 말이지. ㅋㅋㅋ


왜 매번 한마음일까요? 왜 직원들이 실패를 두려워할까요? 왜 좋은 사례도 잘 정착이 안될까요? 왜 신사업이 잘 되지 않을까요?


이쯤 되니 저도 사실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왜 그런지 진짜 모르시는 거예요? 모르는 척하시는 거예요?


실패와 도전을 장려하기 전에 조직 내에서 계속되고 있는 구조적인 실패를 돌아봐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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