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성공 경험의 효과
- 코리야, 투잡 한다는 이야기 들었어. 무슨 일 하고 있어?
- 아, 네. 아시는 분 사업도 돕고, 종종 강의도 해요.
- 강의? 무슨 강의 하는데? 어떤 주제로?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지금도 선뜻 대답하기가 어렵다. 매번 가장 최근에 했던 강의 주제나 자주 했던 내용으로 둘러대기 바쁘다. 한 번은 강사 프로필을 받은 교육회사 대표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강사님, 진짜 이 강의를 다 해보신 거예요?
물론 회사에서 경험하거나 배운 것을 강의로 연결하다 보니 주제가 자연스럽게 넓어진 것도 있지만, 제한적인 연차 사용에 맞춰서 일정이 맞는 강의를 선택해서 하다 보니 강의 주제보다는 그 강의가 언제인지가 더 중요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강의가 있는 날, 내가 회사에 연차를 사용할 수 있느냐였다.
첫 번째 강의 경험은 사내에서 엑셀로 시작했다. 꽤 범위가 큰 지역의 영업 실적을 관리하고 있었기에 업무의 많은 시간을 엑셀과 함께 했고, 다양한 템플릿을 만들어 내면서 사람들에게 '엑셀을 잘 다루는 직원'으로 알려졌다. 어느 날 회사 교육팀으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추천받아서 연락드렸어요. 신입사원 엑셀 교육을 부탁드립니다.
매년 사외강사에게 고액의 강사료를 지불하며 진행했던 교육인데, 올해부터는 비용도 절감하고 회사 사례를 포함하기 위해 사내 직원에게 요청한다고 했다. 당시 강의라는 분야에 관심도 없던 나는 번거롭고 귀찮아 몇 차례 거부했지만 소정의 수고비가 있다는 말에 별생각 없이 책이나 사서 볼까 하는 마음으로 강의를 승낙했다. 그리고 며칠 후 교육팀의 또 다른 직원에게 전화가 왔다.
- 강사님! 신입사원 교재를 부탁드립니다.
- 네? 교재요?
- 네. 다른 과목과 함께 책으로 인쇄해야 합니다. 이번 주까지 주세요.
이런... 나쁜...
어쩐지 내가 소속한 조직의 상무와 팀장에게도 친절하게 협조 메일을 보내주더라니. 지금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처음이었던 나는 예상치 못한 숙제에 당황했다. 결국 그 주 내내 퇴근 후 회사에 남아 눈이 빨개질 때까지 엑셀 화면을 캡처하며 두꺼운 '신입사원 엑셀 교본'을 완성했다. 교재를 쳐다만 봐도 눈이 아파올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재미있는 것은 그다음에 걸려온 교육팀의 또 다른 전화였다.
신입사원 교재를 봤어요. 기존 직원 대상 과정도 하나 만들려고요.
그렇게 해서 그 해에 엑셀로 회사에서 줄기차게 강의를 했다. 많지는 않았지만 소정의 수고비를 매달 받으니 월급 외에 또 다른 수입이 생긴 것 같아 왠지 뿌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가까운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그 이야기를 자랑하듯 꺼냈다.
- 금액은 적지만 매달 하니까 상당히 쏠쏠해.
- 그래? 다른 기관에서 하면 4~5배 이상 받을 텐데. 아쉽다.
- 에이. 그게 가능해? 하면 좋겠지만. 나는 회사원이잖아.
스쳐 지나가는 잡담이었지만, 그 이야기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도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많은 심리학자들이 언급했던 '손실 혐오'의 효과였을까. 무엇인가를 손해보고 있다는 속 쓰림이 계속 느껴졌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엑셀 강의 커리큘럼을 더 있어 보이게(?) 만들어 다른 회사에 보내기 시작했다. 수차례의 제안과 우여곡절 끝에 어느 기관에서 어느 날 연락이 왔다.
강사님, 강사료 조정이 가능할까요?
전화 통화 너머로 들리는 회사 이름을 듣자마자 심장이 쿵쾅거렸다. 이름도 없는 강사가 너무 높은 강사료를 요구했던 것일까. 강사료 조정을 요구하는 내용이었지만 연락이 왔다는 것 자체에 환호성을 지르고 싶었다. 그리고 그동안 받았던 수고비의 정확히 4배를 강사료로 받았다.
우리가 어떤 일을 감히 하지 못하는 것은 그 일이 너무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어렵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그 일을 시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 세네카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라고 했던가. 이 작은 성공 경험은 시작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