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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코리 Nov 17. 2019

그 남자의 두 집 살림

꼭 하나만 선택할 이유가 없다

- 이제 회사로 돌아오지 않을 거지?
- 무슨 소리예요? 저는 목표가 정년퇴직인데.
- 응? 네가 그렇게 말하니 정말 회사 밖은 지옥인가?
- 그게 아니라..


현재까지의 직장생활을 구분해보면 '회사올인 - 투잡 - 휴직' 순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회사만 알던 시절에는 일이 재미없다는 후배들에게 '재미를 찾으려면 입장료를 내고 놀이공원에 가라'는 농담을 자주 했었다. 듣는 후배들은 항상 재수 없다고 했지만, 실제로 회사 다니면서 사람이 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나는 회사가 좋았다. 하지만 남녀 간의 사랑처럼 한계효용의 법칙은 여지없이 적용되었고 직급이 올라가면서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을 많이 보며 회사와 멀어졌다. 그렇게 조금 이른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헤어짐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스페인어에는 안식처라는 의미의 '케렌시아(Querencia)'라는 말이 있다. 어느 순간 시작된 투잡은 슬슬 지쳐가는 회사일에서 벗어나 나를 충전하는 나만의 '케렌시아'였다. 대부분 투잡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회사일에 집중하지 않고 딴짓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안 해본 사람들은 원래 모르는 법. 딴짓은 내게 스트레스 해소와 충전의 시간이었고,  재미가 없던 회사일에 다시 열정을 불꽃을 당겼다. 연차를 내고 다른 기업과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나면 이상하게 다음날 하기 싫었던 보고서도 술술 풀렸다.


When you follow your curiosities, you will bring passion to your new careers, which will leave you more fulfilled. And by doing more than one job, you may end up doing all of them better. - Kabri Sehgal. HBR


어느 날 문득 회사 인사 카드를 열었는데 나의 정년퇴직은 앞으로 20년도 넘게 남아 있다고 했다.


매일 소가 되어 밭에서 14년 동안 일했는데,
앞으로 20년도 더 남은 거야?


케렌시아는 본래 투우장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소가 투우사와의 싸움에서 지치면 심신을 달래는 장소라고 했다. 투잡으로 안식처의 맛을 본 그 소는 잠시 쉬어가기로 결정했다. 투우장에서 싸움을 22년을 하든 21년을 하든 퇴직할 때 즈음엔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다 늙은 소가 되어 쉬기보다는 한참 밭에 나가 일해야 할 젊은 시절에 쉬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휴직을 신청하자 많은 사람들은 내가 곧 퇴직할 것이라 예상했고, 아내는 불안해했다. 나름대로 정년퇴직을 완수하기 위해 시작한 일인데 도리어 오해를 샀다.


Man does what he convinced himself he loves for a living. - the Onion


이만한 직업이 없다며 자신을 설득하는 사람들을 풍자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회사일을 좋아하던 나도 그런 부류가 아닌가 확인하고 싶었다. '정글 동물이 아니라 밭에서 일할 수 있는 소라서 다행이야'라는 자기 세뇌에 빠져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회사 다니면서 했던 딴짓 외에도 다른 직업들을 탐색해 보고 싶었다. 회사에서 하던 일 외에도 궁금하고 해보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았다. 휴직은 돌아갈 곳이 있으니 더욱 안전한 도전이라 생각했고, 운이 좋아 몇 가지 잘 만들어지면 남은 20여 년의 회사 생활 동안 꾸준히 투잡으로 재미를 볼 생각이었다. 


이 정도 되면 나의 휴직과 정년퇴직 계획에 대한 오해가 풀렸을까.



회사에는 대학원 학비지원 프로그램이 있다. 흥미로운 것은 대학원을 졸업한 친구들 중 적지 않은 수가 회사를 옮기거나 퇴사를 했다. 퇴사하는 한 친구에게 대학원 졸업을 전후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물었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지.


매일 같이 회사에 출근하여 밤늦게까지 일할 때는 세상 돌아가는 것을 잘 몰랐다고 했다. 대학원에 가보니 다양한 삶이 있었고, 외부 기업들의 사업을 보면서 남은 청춘을 다르게 쓰기로 했단다. 아마도 금지된 과일을 먹었던 아담과 이브가 이런 느낌이었을까.


나도 다시 회사로 돌아가면 금지된 과일을 먹은 소처럼 완전히 다른 회사원이 되어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회사 밖을 모르는 소처럼 행동하며 정년퇴직까지 두 집 살림을 꾸준히 해볼 생각이다. 그래도 누군가 앞선 질문처럼 휴직 전후의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묻는다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편안함을 느끼는 'Comfort Zone'이 달라진 것 같아요.



어느 드라마에서 '회사가 전쟁터라면 회사 밖은 지옥'이라고 했다. 회사를 오래 다닐수록 회사 안은 정말 편안한 'Comfort Zone'이었다. 왜 두목 원숭이들이 회사에 늦게까지 앉아 있고 주말에도 자주 나오는지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휴직은 그런 나의 Comfort Zone을 조금씩 확장시켰다. 예전에는 회사가 나의 든든한 베이스캠프였고(Base Camp = Comfort Zone), 그 영역을 기반으로 투잡과 휴직이라는 모험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안전지대는 회사라는 베이스캠프보다 그 영역이 더 넓어지기 시작했다(Base Camp < Comfort Zone).


회사가 없어도 나에 대해 할 이야기가 많아졌고, 회사에서도 후배들을 압박하거나 부끄러운 일을 하면서 '월급 받으니까'라며 나 자신을 합리화할 필요도 없어졌다. 조금씩 나다운 삶의 중심을 잡아갔다.  

 

회사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복지


물론 월급과 연차도 당연히 좋다. 하지만 투잡과 휴직이야말로 회사원이 꼭 퇴직 전에 누려야 할 최고의 복지가 아닐까. 이것을 누리기 전에는 그 어떤 회사원도 사직서를 먼저 던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당신도 꼭 두 집 살림을 해보고 홀로서기를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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