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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코리 Nov 05. 2019

남편의 늦바람

회사원 말고 다른 일도 해보고 싶었어

집 근처에는 다양한 콘셉트의 놀이터가 여러 개 있다. 각 놀이터의 형태와 놀이기구가 달라 아이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는 것을 보면 만드신 분들의 고민도 느껴지고 새삼 고맙기도 하다.


- 아빠, 이번에는 저쪽 놀이터로 가봐요.
- 왜? 이 놀이터가 제일 좋다며.
- 그래도 하나만 놀다 가는 것은 아쉽잖아.


문득 아이의 말에서 나의 휴직 이유를 한 가지 더 찾았다. 흔히 좋은 직업은 기쁨, 보상, 몰입을 준다고 했던가. 14년 간의 회사 생활에서 위의 3가지를 충분히 즐기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기쁨과 몰입을 잃어가기 시작했고 나는 당황했다. 그럴 때마다 주위에서 하는 이야기도 '잘 다니던 회사를 왜 쉬냐'였지만, 나 자신도 충분히 설명할 이유를 말하기가 어려워, '그냥'이라는 대답으로 일관했다.


- 자기야, 나 회사원 말고 다른 것도 하고 싶었나 봐.
- 늦바람 났구먼.
- 응? 그게 무슨 소리?
- 윤종신 님의 늦바람 들어봐. 딱 자기 이야기야.


아내는 윤종신 님이 방송활동을 중단하고 늦바람이 나서 이방인 프로젝트를 하러 갔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늦바람은 10여 년의 회사 생활을 '일시정지'시킨 내 마음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 같았고, 그 옛날 공일오비 앨범을 듣던 향수를 자극했다. 나는 한 줄 한 줄을 음미했다.



너무 오래 머문 것일까 여긴 정말 머물 곳일까
여기서 보고 느낀 그 모든 게 내게 최선이었을까


대학 시절 후배들이 '선배는 졸업하고 뭐할 거예요'라고 물으면 나는 주저 없이 'PC방과 포장마차'라고 대답했었다. 낮에는 친구들과 게임하면서 돈을 벌고 밤에는 요식업으로 생계를 유지하겠다는 나름의 전략이 있었다. 졸업 직전까지 회사원이 되는 것은 꿈도 꾼 적이 없었지만, 4학년 5월 유부남이 되면서 갑자기 안정적인 수입을 가지고 싶어 졌다.


그렇게 회사원이 되어 14년이 흘렀지만 매 순간 잊지 않았던 생각은 '혹시 회사에 입사하지 못했다면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였다. '더 잘 되고 더 흥미로운 삶을 살 수도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은 항상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있었지만 이미 투자가 많이 된 포커게임에서 중간에 '다이(Die)'를 외칠 수는 없었다.


내 청춘은 이번 한 번뿐인데.. 여기 한 곳에서 이렇게 다 보내도 되나.. 아놔..



너무 늦었다고 하겠지 무책임한 늦바람이라
하지만 너무 많은 남은 날이 아찔 해오는 걸


고스톱과 포커의 차이는 중간에 외칠 수 있는 '다이(Die)'라고 했다. 게임을 그만할 선택권이 본인에게 있는 포커에 비해 고스톱은 중간에 마음대로 내릴 수가 없다. 가장 우세한 점수를 가진 사람의 고 또는 스톱의 결정에 따라 계속 가게 된다.


K선배 휴직했대, L 선배는 퇴직하고. 부럽다.


회사는 포커게임에서 고스톱을 치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다이(Die)'를 외친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 회사가 고스톱 해줄 때까지 기다렸다. 섣불리 '다이'를 외쳤다가 새로 받은 카드가 더 안 좋을까 봐 걱정도 되고, 이제까지 들어간 게임머니도 아까워 자연스럽게 고스톱처럼 플레이를 했다. 나는 그것이 아쉬워 중간중간 다른 쪽 게임을 살펴보며 그쪽 카드도 한 번씩 받아봤다. 그리고 어느 정도 다른 쪽 게임에 자신감이 생길 즈음 회사의 게임에서 '다이'를 외치고 몇 게임 쉬어가겠다고 선언했다. 왜 그랬을까.


종신이 형 말대로 포커를 칠 날이 너무 많이 남아서 아찔했었던 것일까.



좀 더 꿈꾸겠어 생각보다 훨씬 느낄 게 많아
바람 맨 앞에서 숨지 말아야 해 겪는 게 이득이래


회사생활을 하면서 그동안 조금씩 해왔던 딴짓들은 쳇바퀴 도는 일상에 신선한 레퍼토리를 선물했다. 어느 날은 세무서에서 사업소득 내역이 날아와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종합소득세를 신고해봤다. 코칭 고객으로 새터민을 만나 북한의 이야기를 듣고, 새로 양성된 코치들을 지도하면서 누구나 짊어지고 있는 삶의 고민으로 위로받았다. 대학에서 강의하며 청년들의 스토리를 듣고 도서관 인문학 강의에서는 학부모님들을 만났다. 식품제조 인증을 도울 때는 위생시설과 제조 공정을 배웠고, 토지수용 이의신청서를 작성하면서 도시공원 일몰에 대해 알게 되었다. 온갖 새로운 것들이 주위에 넘쳐났다.    


도대체 요즘 뭐하고 다니는 거야?


회사 다닐 때 보다 바쁘게 돌아다니는 내게 어느 날 아내가 물었다. 약간 화가 난 것을 감지하고 납작 엎드려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대답을 했다.


경험치 쌓으려고 사냥 중이야. 레벨업 하려고.



나 조금 더 멋있어질래 남들 얘기 속 그거 말고
뭐가 더 내 거 인지 내 마음 인지 이젠 내가 보여


휴직을 연장하고 혼자만의 제주 여행을 떠났다. 제주 상권을 담당하던 시절에는 일 때문에 한 달에 2번씩 제주 비행기를 탔지만, 제대로 된 여행을 해보지는 못했다. 가족들과 제주 여행을 떠날 때는 아이들과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번에는 한량처럼 아무 계획 없이 숙소에서 책을 읽고 바닷가를 거닐기도 하고 카페에서 하루 내내 멍을 때리기도 했다. 그 어느 때보다 제주에 길게 있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적은 장소를 방문하고 돌아왔다.


아 내가 이제 이런 여행도 할 줄 아는구나.


왜 예전에는 그렇게 여행만 가면 전투적으로 돌아다니고 휴식 시간도 아까운 것처럼 빡빡하게 일정을 짰을까. 하나의 놀이터에서만 놀아야 했던 아이가 '잠시 다른 놀이터 다녀와도 돼, 다만 잠깐 뿐이다.'라는 허락을 받은 느낌이었을까. 아무런 조건 없이 여유가 생기니 무엇이 내 스타일인지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슬슬 더 행복해졌다.



각자의 길인 걸 다 다른 나그네인걸 만나면 토닥여줘
우연한 그늘에서 내 길을 우기지 말고


선배, 그래서 휴직하라는 거예요?


한때 퇴직하고 세계여행을 하거나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는 것이 유행처럼 많아졌었다. 휴직하고 한 번씩 소식을 전하면 회사 후배들이 연락을 해서 부럽다며 자기도 휴직을 해야 되는 거냐고 묻을 때마다 난감했다. 세세하게 묻는 후배들에게 어쩔 수 없이 휴직을 준비한 과정과 생계를 위한 활동들을 공유했지만, 때때로 걱정이 될 때도 많았다. 실제로 긴 휴직을 신청했다가 '시간만 가는 것 같아서 일이라도 해야겠다'며 계획했던 것보다 일찍 회사로 돌아간 친구도 있었다.


그래서 꼭 말해주고 싶다. 휴직은 정말 좋다. 그렇다고 누구나 다 '다이(Die)'를 외치고 떠나야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종신이 형 말대로 멋지게 자기 길을 가고, 그것을 굳이 우기지도 말자. 그냥 우연히 만나면 토닥여 주자. 정말 잘했다고. 



나 브런치 계정을 '이방인'으로 바꿀까?


며칠 후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한가롭게 아내와 아침을 먹고 거닐다가 다시 늦바람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이미 종신이 형의 노래 가사와 행보에 꽂혀 있었다.


- 역시 나는 윤종신 님 급이었어. ㅋㅋ
- 그렇지 늦바람은 비슷한 급이긴 하지..
- 늦바람은? 뭐지 이 느낌은?
- 재정적으로도 같은 급이었으면 좋았을텐데..
- 윽..


그러고 보니 늦바람과 더불어 종신이 형과 나의 공통점을 하나 더 찾았다. 아내의 전폭적인 지지. 이것이 없다면 포커게임에서의 '다이(Die)'도, 이유 없는 늦바람도, 이방인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더 나의 늦바람은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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