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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코리 Sep 05. 2019

휴직하고 출근을 계속한 이유

휴직자가 하면 좋은 첫 번째 루틴

정확히 이야기하면 휴직자의 신분으로 회사 근처로 계속 출근했다. 이 이야기를 꺼내면 대부분의 동료들은 이런 반응을 보였다.


아니?! 왜?! 미쳤어? 여길 왜 와?
지긋지긋한 곳을?!


학위 파견이나 휴직으로 회사를 잠시 쉬는 동료들은 절대로 회사에 오지 않는다고 했다. 근처 역에도 오지 않는다는 말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할 정도면 출근이 그 정도로 싫고 부담스러운 일이었을까. 그렇게 싫은 일에 청춘을 다 바치고 나이가 들어서야 비로소 자유로워진다는 생각을 할 때면 회사원이라는 업을 계속해야 하나 싶을 때도 있었다.


난 그렇게 회사가 싫어서 휴직을 한 건 아니야.
아니 그럼 왜 했어?!!


왜 했는지 이야기하려면 밤을 새워도 부족할 것 같다. 그만큼 회사 생활도 오래 하기도 했고 고민도 많이 했다. 휴직하고 계속 출근을 했던 것도 그 과정에서 결정한 일종의 나만의 환경 설정이었다. 부모가 말려도 가는 게임방과 가기 싫은 학교의 차이는 무엇일까 생각했다. 회사 갈 때 보이던 축져진 어깨의 중고생들이 나와 비슷해 보였다. 휴직하면 회사가 가고 싶어 질까 궁금했다. 그래서 출근해봤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고 휴직기간을 어떻게 보낼지 계획하기에 안성맞춤의 시간이었다. 휴직 경험자로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휴직 첫 번째 주 회사 출근은 휴직자의 필수 코스다. 




01 만끽하는 자율성


어느 요양원에서 노인들을 둘로 나눠서 A집단에는 노인들이 화초를 스스로 돌보게 하고, B집단에는 화초 관리를 직원이 할 것이라고 했다. 6개월 후 A집단은 15퍼센트가 사망한 반면, B집단은 30퍼센트가 사망했다는 실험 결과가 있다. 사회과학 실험을 100% 신뢰하자는 의미는 아니지만 이 실험을 참고하여 나는 지난 회사 생활을 행복도와 자율성이라는 2가지 지표로 정리해봤다.



당연히 그래프는 우상향의 비례 곡선을 보여줬다. 회사에서 업무와 일하는 방식에서 자율성이 보장되었을 때 나는 행복함을 느꼈다. (다른 사람도 그럴 것이라는 심리학 실험들이 꽤 있는데, 굳이 여기서 논의하지 말자.) 하지만 직급이 올라갈수록 이런 자율성은 갈수록 급감했다. TF팀장을 할 때는 휴가나 교육 출장 조차도 눈치가 보였다. 출근해서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일을 하고 싶었지만, 그건 꿈에나 나오는 이야기였다.


사람들은 통제력을 행사하는데서 만족감을 느낀다. 뭔가 통제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만족감을 준다.
- 대니얼 길버트, 심리학자


그리고 휴직을 했다. 출근해서 자율성을 만끽하고 행복도를 올리고 싶었는데 그건 느껴보지 못하고 쉬게 되었다. 10년이 넘게 다닌 회사에서 벗어나 갑자기 맞이하는 그냥 자유시간이었다. 물론 내 시간 전체에 대한 자율성을 보장받는다는 행복감도 있었지만, 뭔가 허전해서 휴직 첫날 출근하여 회사 근처 커피숍에 앉았다. 회사처럼 지시받은 업무는 없었지만 그다음 주에 요청받은 어느 기업체의 강의 교재를 만들고 커피를 들이켰다. 그냥 느낌이었을까. 그렇게 쓰던 에스프레소가 왜 이렇게 달지? ㅋㅋㅋ



02 행복의 정의


모든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며 여기에 예외는 없다. 행복은 모든 이들의 모든 행동의 동기이며, 심지어 스스로 목을 매달아 죽는 사람도 이 점은 같다.
- 블레즈 파스칼, 철학자


설마 자살도 행복하기 위해서 한 것이라고? 그럼 나도 행복하기 위해 휴직한 것인가. 당연한 이야기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행복한 휴직을 보낼 수 있을까.


행복의 첫 번째 비밀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 꾸뻬 씨의 행복 여행


위의 파스칼 글과 이 글을 연결해보면 다음과 같다. '모든 사람의 모든 행동의 동기는 행복인데, 그것은 비교하지 않는 것에서 출발한다.' 좋은 이야기다. 하지만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가 되면서도 솔직히 하기 어려운 일이다. 일상에서 회사의 평가는 동료들과 비교로 이뤄지고 아이들의 성적도 등급으로 대학을 가는데 비교를 하지 말라니. 이건 마치 회사의 발전을 위해 직원들 간의 협업과 단합을 강조하면서도 실제 승진과 임금인상은 상대평가로 이뤄지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한국 사람들의 보상 영역은 자기 점수가 높더라도 상대의 점수가 높으면 미미한 활동을 보였지만, 자기 점수가 낮더라도 상대 점수가 더 낮으면 강한 활동을 보였다. 한국인의 뇌는 불행히도 '비교하는 뇌'였다.
- 최인철, 심리학자


비교당하는 상황에 내몰려 있으니 당연한 것 아닐까. 어쨌든 한국인은 불행히도 비교하는 뇌이니, 나 또한 비교하는 뇌를 가지고 있음을 거부하기보다 인정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행복의 첫 번째 비밀은 이미 틀려먹은 것 같고 다른 방법이 없나. 누구랑 비교를 해야 하는 거야.


우리를 행복하거나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평가이며, 중요한 것은 자신의 비교 대상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 에카르트  폰 히르슈하우젠, 의사


그때 창밖으로 죽상을 하고 좀비처럼 회사 입구로 들어서는 회사원들이 보였다. 아.. 멀리서 안 찾아도 되겠다. 매일 이 시간에 여기에 앉아 있으면 되겠네. 역시 행복은 가까운 곳에 있었어.



03 나만의 루틴


휴직 전에 만났던 좋은 인연 중에 1인 기업 하는 분들이 하는 공통적인 조언이 있었다. 항상 일했던 장소와 시간이 달라지기 때문에 자신만의 리듬을 잃을 수 있다는 경고였다. 기존에 휴직했던 선배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피곤할 때는 자고 여행 다니고 했더니 무엇을 했는지 모르게 휴직 기간이 끝나버렸다고.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습관에서 나뉜다. 루틴은 자신만의 고독한 싸움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안간힘이다.
- 강원국, 작가



나도 안간힘을 쓰기로 했다. 휴직 후 계속 회사 근처 별다방으로 출근하여 며칠 개인적인 일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집 근처의 별다방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강의가 있거나 아내와의 티타임이 있는 날은 조금 늦게 출근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카페에 출근하여 노트북을 열고 커피를 들이키며 하고 싶은 일을 정리하는 것은 나만의 루틴이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시간이라는 유한한 자원을 든든히 관리하는 나만의 시스템이 되었다.


아니?! 휴직한 사람이 어딜 그렇게 나가.
쉬니까 얘들 좀 봐.


아내의 외침을 뒤로하고 계속 나만의 루틴에 집중했다. ㅋ 물론 현실 육아를 피하려고 계속 출근한 것은 절대 아니다. 집에 있으면 혹시 어렵게 확보한 나의 자율성이 손상될까 봐 미리 걱정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단지 아내의 오해일 뿐이었다. ㅋㅋㅋ




휴직을 하면 꼭 남미나 오지 탐험 등을 이야기하면서 다녀오라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부분 안 해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다. 나는 해본 사람으로서 꼭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무작정 '묻지 마 여행'하지 말라고.


일단 특별한 계획이 없다면 무조건 계속 출근해라. 그리고 회사 건너편 고층 커피숍에 자리를 잡고 노트북을 열어라. 동료들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 '주관적 안녕감'이 어떤지 숫자로 표시해라. 그리고 오늘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자율적으로 기록하고 앞으로 무슨 일상을 보낼 것인지 루틴을 설계해라. 정확히 일주일만 지나면 갑자기 가고 싶은 곳도, 만나고 싶은 사람도, 하고 싶은 일도 저절로 생긴다. 그렇게 당신의 휴직은 인생의 전성기처럼 다가올 것이다.


행복은 '주관적 안녕감'이다. 행복이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주관적으로 어떻게 평가하고, 무엇이 자신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의 문제라는 것이다.
- 명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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