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0일은 결혼기념일 7주년이었다. 벌써 7년의 시간이 흘렀다니 믿기지 않는다. 7년을 함께 살았구나.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지. 그 사이 세 아이가 태어났다. 둘이 시작해 지금은 다섯 식구가 한 지붕 아래 산다. 세월이 흐른 만큼 아내도 나도 변했다. 풋풋한 시절에 만나 세 아이를 키우면서 억척스러워졌다. 낼모레가 10주년이라고 생각하니 이러다 나이만 먹을까 걱정이다. 시간 참 빠르다.
7주년이 되는 날, 자다 말고 눈이 번쩍 떠졌다. 시간을 보자마자 한숨을 내쉬고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이미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집안의 불이 다 꺼져있고 아내는 자고 있었다. 아내도 나도 아이들을 재우면서 잠든 것이다. 7주년 결혼기념일을 위해 맥주도 샀는데 계획이 틀어지고 말았다. 아내와 다시 오지 않을 시간에 기분 내지 못해 아쉬웠다. 순간 나도 모르게 머리를 쥐어박으며 잠을 못 이긴 나를 원망했다.
부랴부랴 아내에게 편지를 썼다. 사실 편지지가 없어 난감했다. 색종이에 쓸까 하다가 책꽂이에 꽂혀 있는 감사노트가 눈에 들어왔다. 다행히 새것이었다. 일단 연습장을 꺼내 끄적끄적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써 내려갔다. 꼴에 작가라고 맞춤법 검사까지 마쳤다. 한 자 한 자 정성 들여 감사노트 첫 페이지에 옮겨 썼다. 다음 날 눈에 잘 띄게 식탁에 올려놓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보겠지, 눈물 쏟을 아내를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 무슨 날이게?"
"오늘 엄마와 아빠가 결혼한 지 7년이 되는 날이야!"
"엄마와 아빠가 결혼해서 유호, 지호, 소이가 태어난 거야!."
"엄마에게 줄 꽃 사러 가자."
그날 유치원 하원 길에 아들과 함께 꽃집에 들렀다. 아내에게 꽃 선물할 때면 매번 아들이 고르도록 했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내가 고르고 싶었다. 아들에게 "오늘은 아빠가 꽃 고를게!" 허락을 구했다.
저온 저장고 안에 이쁜 꽃이 많았다. 거의 대부분 이름 모를 꽃들이다. 그냥 사던 대로 노란 장미꽃을 살까, 아니면 해바라기를 살까, 지난 번은 분홍색으로 샀으니 다른 색 장미꽃으로 살까 고민했다. 한참을 둘러보다 흰색과 자주색이 섞인 꽃다발이 눈에 들어왔다. 알고 보니 "리시안셔스 꽃"이란다.
"이 꽃 잘 팔리나요?"(무슨 질문이 그래!)
꽃말을 검색해보니 "변치 않은 사랑"이었다. 꽃말을 알고 나서 더는 다른 꽃이 눈에 안 들어왔다. 꽃말이 결혼기념일 꽃 선물로 딱이었으니. 운명이다 리시안셔스를 사기로 정했다.
"유효야, 엄마한테 편지 써주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들에게 쪽지를 써달라고 했다. 아직 불러주는 대로 받아쓰지 못해 "엄마 아빠 결혼해줘서 고마워요. 영원히 사랑한대요."라고 포스트잇에 써줬다. 글을 보고 오히려 아들이 신났다. 뭘 아는지 나를 보고 씩 웃었다. 아들이 정성껏 포스트잇에 써줬다. 아들이 써준 글 덕분에 감동이 더 크게 밀려왔다.
그날 저녁 약속대로 아내 종아리 마사지를 1시간 했다. 아내는 마사지해준다는 말을 벼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이들이 잠들자마자 주섬주섬 오일과 괄사를 챙겼다. 아내는 수건을 깔고 누워 1시간 종아리와 발바닥 마사지를 받았다. 아내는 만족한 듯 빙끗빙끗 웃었다.
오늘을 기억하며 7년을 더 살아봐요. 팥빙수를 좋아하는 여자와 막걸리를 좋아하는 남자가 만나 한 가정을 이룬 기적을 한평생 이어가요.
이제야 도착한 선물이었지만 덕분에 7주년 감동이 쭉 이어졌다.사랑하는 당신에게.
사랑하는 슬, 오랜만에 편지 쓴다.
벌써 결혼한 지 7주년이 되었네.
20일 되는 날 깨어 있으려고 했는데 잠들어버렸어.
결혼한 7년 동안 애썼고, 함께 해줘서 고마워.
특별히 1시간 전신 마사지해주려고 했는데 아쉽다.
몹쓸 잠을 이기지 못했어.
오늘 저녁 진심 마사지 배워서 해줄게.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은 당신을 만난 것이고 당신과 결혼한 일이야.
슬, 늘 고맙고 부족하고 서툰 나를 이해해줘서 고마워. 사랑해.
올해는 꼭 단둘이 여행 가자.
여보, 올해 얼마 만에 느끼는 혼자만의 시간이야.
7년 만에 가지는 시간 충분히 즐겼으면 좋겠어.
올해는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천천히 시작해도 돼.
7년 헛되지 않았다고 말해주고 싶어.
당신 덕분에 세 아이가 잘 크고 있잖아.
당신 멋진 사람이야.
내가 도울일 있으면 뭐라고 할 테니 걱정 말고.
다시 한번 결혼 7주년 축하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