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보건실에 청설모가 죽어있어요."
며칠 전 보건 선생님의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만 듣고도 전화기 너머 어쩔 줄 몰라하는 보건 선생님의 모습이 눈에 그려졌다. 어떻게 산에 있어야 할 청설모가 보건실에서 죽었나 보건 선생님의 말을 듣고도 믿기지 않았다. 설마 하는 마음에 "보건실에 청설모 사체가 있다고요?"라고 제차 되물었다.
"잠시만요 금방 갈게요."
일하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 사체를 처리할 검정봉투와 비닐장갑부터 챙겼다. 서편 복도 끝에서 보건실이 있는 동편 복도 끝으로 걸어가면서 오만가지 생각을 했다. 이제 하다 하다 청설모 사체까지 처리하는구나. 그런데 어떻게 치우지.
보건실 복도에 정체 모를 네모난 상자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보건 선생님은 기겁을 하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보건 선생님은 나를 보자마자 "저기 안에 있어요."라며 상자 쪽으로 손을 가리켰다. 상자 주위에는 5학년 남학생들이 빙 둘러 서있었다. 보건실 청소 당번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이 보건실을 청소하다가 상자 안에서 죽은 청설모를 발견한 것이다. "복지 샘 어떻게 해봐요."
"차라리 다람쥐였다면..."
상자를 자세히 보니 주먹이 겨우 들어갈 작은 구멍이 뚫려있었다. 잘 안 보이니 조금 무섭더라. 조심스럽게 구멍 안을 들여다보니 검은 털이 보였다. 순간 땀이 삐질삐질 어떻게 꺼내나 침만 꼴깍꼴깍 삼켰다. 어찌나 긴장되던지 차라리 다람쥐였으면 귀엽기라도 하지. 검은색인 데다 몸집이 생각보다 컸다.
보건 선생님이 쓰레기봉투에 버리면 되냐고 물었다. 이런 일은 처음이라 난감했다. 처음에는 굳이 사체를 꺼낼 필요가 있나 싶었다. 상자체 버리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죽은 청설모를 불쌍히 여기는 5학년 남학생들이 보였다. 순간 그냥 버리면 안 되겠다 싶었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어?"라고 물었다. 아이들이 묻어주자고 하길래 곧장 삽을 챙겨 화단으로 갔다. 그래 묻어주는 게 좋겠어.
삽으로 땅을 팠다. 상자에서 겨우 꺼낸 청설모를 묻을 땅에 내려놓았다. 순간 숙연해졌다. 어쩌다 보건실에서 죽은 청설모를 말없이 추모하는 듯했다. 옆에 나란히 서있던 아이들은 연신 불쌍하다며 안타까워했다. 생명을 가엾이 여기는 아이들이 기특했다. 마침 손에는 화단에 꺾은 국화꽃 다발이 있었고 청설모를 땅에 묻고 노란 국화꽃을 보기 좋게 놓았다. 아이들이 "잘 가! 건지산에 가서 놀아"라고 한 마디씩 건네는데 마음이 찡했다. 아이들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지길 바라며. 지금 생각해도 땅에 묻어주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