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기꺼이 제 몸 태우는 연탄 한 장

by hohoi파파

매주 목요일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부모님 집에 간다. 20, 30대에 지냈던 내 방은 시간이 멈춘 듯 아직도 그대로다. 책꽂이를 보다가 [광화문에서 길을 찾다] 책이 눈에 들어왔다.


시집인 것 같은데 뭔가 이상했다. 표지부터 특이했다. 교보생명도 출판사가 있나 싶었다. 머리말을 읽어보니 시중에 출판되어 판매하는 책은 아니었다. 교보생명 본사 외벽에 걸린 광화문글판에 실린 시와 글을 모아 본사에서 만든 책이다. 어머니가 보험 회사를 다니시는데 회사에서 가져온 책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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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넘겨보다가 안도현의 [연탄 한 장] 시가 눈에 들어왔다. 제목만 보고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말라는 시인 줄 알았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 시리즈처럼 [연탄] 시리즈인가 싶어 신기했다.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이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을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안도현-

시를 읽다가 [연탄 한 장]이 마치 부모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부모의 삶이란,

나 아닌 자식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이 되는 것.


부모님이 나를 온몸으로 사랑했기에

험난한 세상을 뚜벅뚜벅 걸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부모님의 사랑을 이어받아 지금은,

부모님처럼 [연탄 한 장]의 삶을 살아가고 살아내고 있다.


한평생 자식 걱정만 하다가 한 덩이 재로 남은 쓸쓸한 모습 같았다.

부쩍 야윈 부모님 모습에 마음이 걸렸다. 언제 늙어버리신 걸까.


나중에 혼자 찬찬히 읽고 싶어 부모님 집을 나설 때 시집을 슬쩍 챙겼다. 이럴 때 보면 참 염치없는 아들이다. 부모님 집에 가면 바리바리 챙겨주시는 바람에 양손 무겁다. 뭐라도 먹여 보내려고 주방에서 바쁘고 뭐라도 챙겨주려고 냉장고를 비운다. 이제 그만 엄마 아빠부터 챙기세요.


자식이 마흔이여도 부모의 눈에는 여전히 어린아이 같나 보다.


요즘 7살, 4살, 3살 세 아이를 키우면서 부쩍 과연 아이들에게 좋은 부모인가 생각하게 된다. 아이들을 잘 키우고 있는지 고민이 된다. 어떻게 해야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모두 잠든 후에 시집을 꺼냈다. 한 구절 한 구절 [연탄 한 장] 시를 다시 읽어 내려갔다. 부모란 무엇인가 기꺼이 희생하며 하염없이 사랑하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지금이 인생에서 제일 아름다운 순간인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부모는 기꺼이 제 몸 태우는 연탄 한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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