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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등교 거부한 지 9일째

by hohoi파파

다윤이가 등교하지 않은 지 9일째가 되었다. 요즘 초장에 억지로라도 데려왔어야 했나 마음이 복잡하다. 만약 다윤이라면 이제는 민망해서라도 학교에 못 나오겠다 싶다.


오늘은 출근하자마자 다윤이네 집으로 갔다. '띵동' 초인종을 누르자 문이 바로 열렸다. 오늘은 웬일로 잠에서 깨어있나 생각하고 있을 때 열리는 현관문 틈 사이로 다윤이 오빠의 얼굴이 보였다. 알고 보니 수능으로 등교 시간이 10시로 늦춰져 집에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도 다윤이는 작은 방에서 이불을 꽁꽁 싸매고 웅크린 채 자고 있었다.


"다윤아, 선생님 왔어! 잠깐 일어나 봐."


다윤이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꼼지락거렸다. 하지만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억지로 깨우면 안 될 것 같아서 장난기가 섞인 말투로 다윤이를 불렀다. "다윤아~ 다윤아~"


도저히 이름을 불러서는 잠에서 깨지 않을 것 같아 알람시계를 켜서 머리맡에 두었다. 시끄러운 알람 소리에 일어날 만도 한데 다윤이는 미동도 않고 누워있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조용히 머리맡에 서서 10초를 기다렸다.


"다윤아, 어서 일어나 봐!"


흔들어서 깨우고 기다리기를 반복하다 뒤집어쓴 이불을 휙 걷어냈다. 그제야 다윤이가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잠결에 눈이 부신지 미간을 찌푸렸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비몽사몽 정신을 못 차렸다.


겨우 잠을 깨우고 연신 하품만 하는 다윤이에게 이야기를 건넸다.


"오늘은 학교 가겠다고 아빠랑 약속했다며,

아빠와의 약속을 키질 수 있게 도우려고 선생님이 왔어"


다윤이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연신 눈만 끔뻑거렸다.


"어제는 몇 시에 잤어?"

"잘 모르겠는데 12시 넘어서 잤어요."


이제 TV 셋톱박스는 없고 밤늦게까지 게임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늦게 자는 것일까 눈만 끔뻑거리는 다윤이를 보고 답답함이 밀려왔지만 차마 입 밖으로 말하지 못했다.


처음 이틀, 새벽 늦게까지 TV를 본 것이 화근이 됐다. 그때 늦게라도 학교에 왔던 다윤이의 생활 패턴이 깨졌다. 새벽 2~3시에 잠들어서 오후 1시에 일어나니 어찌 일찍 잠들 수 있겠는가. 피곤하고 무기력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든 끊어야 하는데 걱정이다.

KakaoTalk_20221117_103952371.jpg 다윤이 이불에 고스톱 치듯 감정카드를 깔았다

"학교에 안 나온 지 9일이 됐는데,

그동안 다윤이 마음은 어땠어? 감정 카드에서 골라볼래?"


다윤이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카드를 찾는듯했다. 한동안 다윤이의 시선이 머무는 카드를 보며 다윤이의 마음을 찾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다윤이는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망설였다. 하품만 해 대며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카드만 바라봤다. 계속 모르겠다는 표정만 지었다.


다윤이에게 '귀찮다'라는 감정 카드를 꺼내 들며 혹시 이런 마음은 아니냐고 물었다. 다윤이는 그제야 다른 카드를 하나 꺼내 보이며 말을 이어갔다.


'피곤하다' '혼란스럽다' '불안하다' '무섭다'


다윤이와 30분 정도 지난 감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윤이의 마음이 조금은 말랑말랑해졌는지 이제 웃는다.


"잠이 깨면 늦게라도 갈게요."


방문을 나서는데 다윤이가 먼저 약속을 했다. 진짜로 약속한 시간에 올진 모르겠지만 다윤이가 먼저 학교에 가겠다고 말한 것이 오랜만이라서 반가웠다. 다윤이 마음이 조금은 열린 것 같다.


기다리기로 마음먹으니 다윤이가 먼저 마음을 연 것인가.


이라크에 "자고 있는 개를 깨울 수는 있지만 자는 척하고 있는 개를 깨울 수는 없다."라는 속담이 있다고 한다. 사실 지난주를 생각해 보면 다윤이를 학교에 데려갈 생각으로 가정방문을 했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잠자고 있는 다윤이를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지고 조급해졌다.


아무리 데려가려고 해도 당사자가 거부를 하면 데려갈 수 없는 것인데 나의 노력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자책하게 되었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터벅터벅 혼자 학교로 돌아가는 길에 왠지 모르게 허탈하더라.


이제부터 등교시키려는 노력보다 아이가 밥은 먹었는지, 아이가 집에 있는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다윤이와 단 10분이라도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 카드 하나면 충분하다.


11시 30분에 출발한다는 다윤이에게 11시에 출발한다는 생각으로 준비하자라고 말했는데 다윤이가 약속을 지킬까. 설마설마 약속 시간까지 몇 분 남지 않았다. 어렵게 한 약속 자기가 한 말을 꼭 지켰으면 좋겠다. 작은 성공의 경험의 계기로 다시 시작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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