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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을 신청했다

초등학생 1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의 삶

by hohoi파파

문서 몇 개가 공람되었다. 그중 하나가 눈에 띈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승인을 알리는 공문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 덕에 4월부터 12월까지 단축 근무를 하게 됐다. 앞으로 1시간 30분을 줄여 오후 3시에 퇴근한다. 이제 변경된 조건으로 새 근로 계약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아들 매니저로서 쓰는 종신 계약서 같았다.


매니저의 삶을 산 지 일주일 되었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로 새로운 정체성인 부캐가 생긴 것이다. 부득이하게 3월은 조퇴를 해 아들 하교 시간에 맞춰 퇴근한다. 수업이 끝나기 전에 도착해 대기한다. 1분이라도 늦으면 아마 매니저의 일을 잘릴지도 모른다.


그뿐인가 학기 초라서 챙길 것도 많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가정통신문 알람이 울려댄다. e알리미와 하이클래스 앱은 하루도 쉬지 않는다. 솔직히 학교에 보낼 서류가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 아직도 확인하지 못한 가정통신문들이 자기를 봐달라고 아우성이다. 학부모가 되어보니 학부모들이 왜 그렇게 가정통신문 회신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지 알겠더라. (그동안 오해해서 죄송합니다. 꾸벅!)


결코 매니저의 삶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일주일 동안 아들 매니저로서 살아보니 해야 할 일을 세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적어도 2023년은 부캐가 아닌 초등학생 1학년을 둔 학부모로서 살고 있지 않을까. 말 못 할 고충을 누가 알아주나. [전지적 참견 시점]에 방송 출연은 못하니 브런치에 글이라도 남기자.

첫 번째는 알림장 보기다. 맡은 업무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이다. 어쩜 다음날 챙겨야 할 준비물이 매일 있는지. 조사서, 동의서 같은 서류부터 풀, 가위 같은 학용품까지 챙기기 바쁘다. 아들이 학교에 다니는지 내가 학교에 다니는지 알 수 없다. 알림장 확인을 하루라도 빼먹으면 안 된다.


두 번째는 스케줄 관리다. 다이어리엔 아들 해야 할 일로 빼곡하다. 요일마다 다른 방과 후 수업을 쫓아다녀야 한다. 바이올린, 클레이, 영어, 축구 수업에 따른 준비물을 따로 챙겨야 한다. 미술학원 가지 않는 날에는 하루 한 장 국어와 수학을 푼다. 매일 30분 개인 학습해 준다.


마지막으로 멘털 관리가 필요하다. 매주 화요일, 금요일 미술학원 가는 날이면 멘털이 나간다. 셋을 모두 하원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3시 20분에 첫째 하교 후 둘째와 셋째를 차례로 하원시킨다. 4시에 수업이 시작해 정신없다. 혼자 진땀 뺀다. 퓨즈가 나간 전등처럼 매일매일 멘털이 나갔다 들어왔다 한다.


이제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근로조건변경서를 작성해야 한다. 서명하는 순간 이제부터 진짜 아들 매니저의 삶을 사는 것이다. 어른들이 함부로 도장 찍고 서명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어찌할꼬. 아무래도 버티고 버티다 마지못해 30일에 작성하고 서명하지 않을까 싶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계약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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