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독서 모임 일지, 23.12.27.
정진호 작가 [위를 봐요] 그림책은 2015년 볼로냐 아동도서전 라가치상을 받았다. 어린 시절 병원에서 보낸 작가의 경험과 건축학 시선으로 그려졌다. 휠체어를 탄 소녀의 시점으로 그려진 그림은 장애인의 마음을 느끼게 해 주며 장애인과 더불어 살기 위한 비장애인의 노력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사고가 났지. 자동차는 바퀴를 잃었고, 수지는 다리를 잃었어." 수지는 가족 여행 중 교통사고가 났다. 수지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하루아침에 장애인이 되었다. 다리를 잃은 수지의 마음은 어땠을까. 아무리 헤아려 봐도 '감히'라는 말밖에 덧붙일 말이 없다. 아마 수지가 보는 세상은 온통 무새책일지도 모른다.
쾅!
수지는 방문을 닫았다. 휠체어를 탄 두 발 너머에 보이는 창밖 풍경. 앙상한 가지만 있는 가로수길, 보도블록은 어지럽게 깔려있다. 마치 수지 마음 같다. "수지야 밥 먹어야지" 엄마가 심술 난 수지를 달래주지만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수지는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았다. 교통사고는 수지의 일상을 바꿔 놓았다.
"수지는 그냥 묵묵히 지켜보았어" 수지는 거리를 하염없이 내려다봤다. 연날리기를 하는 사람,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 친구들과 고무줄 놀이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더 외로웠을 것이다. "개미 같아" 거리를 걷는 사람들을 보고 나만 다른 세상에 있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발 디딜 틈 없는 세상에 수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내가 여기 있어요, 아무리 좋으니...... 위를 봐요." 뭐 하냐는 소년의 말이 얼마나 반가웠을까. "그럼, 이건 어때? 제대로 안 보일 것 같다던 소년의 생각지도 못한 행동에 놀랐다. 소년의 작은 관심과 따뜻한 배려는 기적을 만들었다. 수지는 비로소 웃었다.
세상이 바뀌었다. 무채색에서 알록달록한 풍선이 보이고 거리에는 벚꽃이 폈다. 거리를 내려다보던 창가에 작은 화분이 놓였고 푸릇푸릇한 초록 새싹이 돋아났다. 휠체어를 탄 수지가 자신이 있던 자리를 올려다보는데 뭔지 모르게 뭉클했다. 꽁꽁 언 겨울 같았던 수지의 마음이 녹기 시작했다.
내가 수지라면 다리를 잃은 모습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세상이 원망스럽지는 않았을까. 집 밖에 나가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렸을지 모르는 일이다. 내가 소년이라면 어떻게 수지의 필요를 바로 알아차렸을까. 과연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소년처럼 행동했을까. 인사만 해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문득, 거리에 색이 입혀진 것이 계절의 변화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수지의 마음에 따라 세상이 달리 보였을 것이다. 마음의 문을 닫고 내려다본 세상은 온통 겨울이었을 테니까. 앙상한 가지에 핀 벚꽃은 수지가 스스로 닫은 마음의 문을 열고 나왔을 때 볼 수 있었다.
수지가 바라는 것은 알량한 동정심이 아니다. 외롭고 고립되어 있는 자신을 향해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맞추는 일일 것이다. 소녀의 행동에 수지는 스스로 닫았던 마음의 문을 열고 세상에 나왔다. 소년의 작은 관심과 따뜻한 배려가 주변 사람들을 움직였다. 수지의 마음에 희망을 심었다.
수지가 마음껏 웃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수지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거리에 나올 수 있는 더불어 사는 세상이지 않을까. 누구나 수지 입장에 처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시선을 맞춰야 한다. 2024년에는 보다 따뜻한 사회가 만들어지길 바라며. 누군가의 소년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