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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i파파 Jul 09. 2024

강천산은 운명인가

강천산

강천산은 순창에 위치한 명산이다. 산 높이는 해발 583.7m에 달하며 구간마다 계곡과 폭포가 많아 물멍 하기 좋다. 산책로는 애기 단풍나무로 줄지어 심어져 있어 가을이 되면 관광객들로 붐빈다. 신라 시대에 창건된 강천사, 절벽을 타고 내려오는 두 줄기의 쌍폭포를 볼 수 있는 구장군 폭포, 해발 250m에 있는 현수교는 꼭 들러야 할 명소다. 맨발 산책로와 나무데크로 이어진 숲 속 둘레길이 잘 조성되어 있어 정상까지 오르지 않아도 강천산을 즐기기 충분하다.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많은 이유다.


순창에서 직장 생활을 해서 그런지 몰라도 순창은 제2의 고향이다. 강천산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차로 50분 거리에 있어 주말에 아이들을 데리고 자주 갔었다. 그때는 아이들이 어려 산에는 오르지 못하고 산책로만 걸었다. 현수교 아래까지 가거나, 아이들이 보채지 않으면 구장군 폭포까지 다녀오곤 했다. 그래서일까 강천산에 갈 때마다 언젠가 한 번은 정상에 올라야지 생각했다. 강천산이 전라북도 100대 명산이라는 것을 알고 더욱 반가웠다. 한 치의 고민 없이 두 번째 등정할 산으로 정했다.


강천산 정상, 왕자봉에 오르는 코스로 정할까 생각하다가 강천산과 이어진 다른 길로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금성산성 입구에서 출발해서 동문 쪽으로 가면 구장군 폭포와 현수교 구름다리로 갈 수 있다. 총 9.5km 거리로 여유 있게 4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알고 보니 금성산성은 임진왜란 때 의병의 근거지가 되었고, 동학농민혁명 때는 치열한 싸움이 일어난 전적지였다. 삼국시대에 축조되어 호남의 3대 산성이 되었다. 성곽길만 따라 걸어도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매표소> 병풍폭포> 강천사> 현수교> 강천산(왕자봉)

인생은 예측하지 않은 방향으로 흐를 때가 있다. 5월 11일, 장모님을 모시고 온 가족과 함께 강천산에 갔다. 첫째와 산에 오르기로 하고 장모님과 아내는 둘째와 셋째를 돌보기로 했다. 첫째와 산 정상에 오르는 동안 나머지 가족들은 산책로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그래서 강천산 매표소를 걷다가 가파르게 올라가는 빠른 코스를 선택해야만 했다. 현수교는 건너지 않고 바로 왕자봉에 올랐다.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처럼 아무리 등산 전 미리 코스를 짜도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산에 오르는 성취감은 올라가 본 사람만 안다. 아들은 숨이 턱에 닿아 아무 말도 못 하고 헉헉거리기만 했다. 아들은 모악산보다 힘들다며 15분도 채 못 가서 여러 번 쉬기를 반복했다. 아무리 정상까지 1km의 짧은 구간이라도 쉬지 않고 오르는 것은 아들에게 힘든 일이었다. 아들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는 경험을 주기 위해 다독여 보았지만, 이 또한 아빠의 욕심이라는 것을 알기에 "힘들면 그만 내려가도 돼!"라고 아들에게 말했다. 그럴 때마다 아들은 괜찮다며 자리 박차고 일어나 다시 걸었다.

정상에 올랐을 때 비구름이 몰려오며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순간 어두워지고 산자락에 그늘이 늘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천둥소리가 산에 울렸다. 티를 내지 않았지만 음산한 분위기에 소름이 돋았다. 변화무쌍한 산의 모습을 처음 목격한 것이다. "아빠 무서운데!" 겁 많은 아들이 서둘러 짐을 챙기며 말했다. 비가 쏟아지기 전에 내려가야 했다. 그날은 누구보다 빨리 하산했다. 다행히 비가 쏟아지지 않았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이날 안전한 등산을 위해 필요한 장비나 준비물을 갖추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빠 따라 나도 갈래"


산 밑에서 기다리고 있던 둘째가 조용히 다가와 산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형이 하면 무조건 따라 하는 둘째지만 그 순간 둘째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 첫째와 모악산에 갔을 때도 가고 싶다고 했었다. 둘째의 말을 더는 모른 채 할 수는 없었다. 둘째를 달래며 "지호가 갈 수 있는 산을 알아볼게. 나중에 아빠랑 단둘이 가자!"라고 말하며 병풍폭포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몇 년 후면 두 아들을 데리고 지리산 종주를 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생각만 해도 설렌다.

이다음에 다시 강천산에 와야겠다. 그때는 이번에 오르지 못한 금성산성에 가 볼 생각이다. 그때는 역사 테마로 등반 계획을 세워야겠다. 성곽길만 걸어도 좋을 것 같다. 길 따라 걷다 보면 고즈넉한 자연과 함께 성벽의 흔적을 관찰할 수 있고 전봉준의 일대기를 알려줄 좋은 기회다. 전봉준은 전 씨 가문의 역사적 인물이기 때문에 같은 전 씨로서 아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역사 공부 시간이 될 것이다. 5월 18일에 태어난 첫째에게는 더더욱 운명 같은 산행이 되겠지.


일단 등산화부터 사자.

(여보, 도... 하나 골라도 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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