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 친구 만나.’
아내는 친구들을 만나도 되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나가고 싶어, 빨래 대답해줘’ 현기증 난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아내는 가고 싶은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그래도 두 아들을 집에 두고 나가는 것이 신경 쓰였는지 '아이들을 두고 가도 돼?' 이내 나근나근 상냥한 표정을 지었다.
누구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혼자만의 시간 없이 자기 삶을 돌아보지 못한다. 온전한 나로 살기란 힘든 것이다. 아이 키우는 부모는 더더욱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아내와 달리 나는 마음만 먹으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출퇴근하면서 걷는 10분 동안, 직장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 동료들과 먹는 여유로운 점심 식사로도 충분하다. 숨 돌릴 시간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반면 아내는 숨 돌릴 여유가 없다. 애들을 보면서 쉬는 게 가능하겠는가. 하루만 아내 대신해 아이를 돌봐봐라. “차라리 일하는 게 낫겠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아내는 한시도 아이에게 눈 뗄 수 없다. 아이를 돌보면서 커피 한 잔 마시는 것은 사치다. 아내는 싱크대 옆에 서서 허겁지겁 밥을 먹는다. 그마저도 요리하다 보면 밥맛이 떨어져 끼니를 거를 때가 많다. 아이들이 잠잘 때나 잠깐 쉴 수 있다. 하지만 아내는 자투리 시간에 쉬지 않는다. 밀린 집안일을 한다. 그제야 빨래를 돌리고 넌다. 장난감으로 널브러져 있는 집을 정리하고 청소기를 돌린다. 아내는 끝이 안 보이는 육아와 집안일로 늘 바쁘다.
사실 아내는 온종일 집안에 갇혀있는 거나 다름없다. 산이 보이고 바다가 보이는 뷰 좋은, 햇살이 들이비치는 거실에 있어도 집에만 있으라고 하면 답답할 것이다. 하지만 빛이 들어오지 않아 컴컴하고 좁은 거실이었다. 거기에 따닥따닥 붙어있는 주택 뷰까지. 그동안 온종일 집에만 있기 얼마나 답답했을까 싶다. 어쩌면 아내는 퇴근하기만을 기다리며 버티고 있었는지 모른다.
육아 스트레스는 풀어야 한다. 스트레스가 쌓일수록 사소한 일에 예민해진다. 욱하는 감정은 이내 폭발하기 때문이다. 쉽게 흥분하기 때문에 아이에게 일관되게 반응하지 못하는 실수를 하게 된다. 상황이나 감정에 따라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문제는 현재 힘든 이유를 아이에게 찾으며 아이 탓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아이와의 관계가 나빠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솔직히 아이를 감정적으로 대하는 아내를 보면서 힘들었다. 어느 순간 아이들에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아내를 보고 감정이 요동쳤다. 부모는 부모대로 힘들고 아이는 아이 대로 억울한 상황이 벌어졌다.
아내가 모처럼 친구들과 약속을 잡으면 등 떠밀며 나가라고 한다. 하지만 아내는 아이들만 두고 나가기 미안하다며 금방 들어온다. 그렇지만 반나절이라도 나갔다 온 아내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일단 표정부터 밝다. 아이와 같이 나가 피곤해할지언정 쭉 처져 있지 않다. 집안에 묘한 긴장감이 없다. 날이 서 있지 않고 예민하게 반응하거나 화내지 않는다. 단 몇 시간이라도 좋으니 육아 해방을 위해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달에 한 번은 꼭 아내 혼자 시간 보내게 해주자. 아내에게 비상금을 털어 차라도 마시고 오라고 등을 떠미는 건 어떨까. 아내는 얼마 만에 느끼는 외출일 테니. 지금 아내는 쉬고 싶다. 더는 혼자만의 시간이 어색하고 낯설지 않게 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