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길들여지길 원한다.
어느 학생이 교육복지실에 두고 간 책. [어린 왕자] 책이다. 이 책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읽히는 동화책이다. 그런데 난 아직 읽지 못했다. [어린 왕자]를 떠올리면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정도가 다다. 그래서일까 덩그러니 복지실에 있는 책이 궁금했다.
이 책의 저자는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서문에서 밝힌다.
이 책은 관계에 서툰 어른들을 위한 동화다. 어른이지만 내면은 어린아이에 멈춘 어른을 위한 책이다.
어린아이에 머문 어른은 타인과 관계를 맺는 일에 서툴다. 어린 왕자처럼 누군가에게 상처 받아 외롭다. 관계에서 반복되는 좌절은 새로운 관계 맺는데 걸림돌이다. 거절당할까 두려워하고 먼저 관계 맺기를 스스로 포기한다. 이 책은 진정한 관계는 무엇인지 곱씹게 하는 동화책 같다.
여우와의 대화하는 장면이 오랫동안 시선에 머물렀다.
관계는 길들여지는 것.
관계에서 길들여지는 것은 무엇일까. 문득 떠오르는 시가 하나 있다.
꽃 - 김춘수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학생들은 쉬는 시간마다 복지실에 온다. 쉬는 시간은 고작 10분이다. 10분 동안 재잘재잘 자기 이야기를 한다. "오늘 수업이 힘들었어요.", "오늘은 잠만 잤어요.", "~ 때문에 짜증 나요."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날 있었던 일상을 나누는 정도다. 그러고는 교실로 들어가기 전 항상 묻는 말이 있다.
제 이름이 뭐죠?
경쟁하듯 자신의 이름을 듣기 바란다. 다행히 그 학생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순간 머뭇거리거나 이름을 몰랐다면 어땠을까. 학생들의 반응을 상상하니 아찔하다.
자신의 이름을 듣고 어찌나 좋아하던지 좋아하던 모습을 떠올리면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름이 불려지고 기억되는 것은 기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름을 부르고 불려지는 일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때부터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님을 믿게 하는 일이다. 외롭고 쓸쓸한 세상으로부터 위로받는 일이다. 자신의 존재를 느끼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흔하게 부르는 이름은 누군가에겐 그토록 듣고 싶은 이름이다.
누군가와 관계하는 일은 자신의 존재를 깨닫게 하고 기쁨을 준다. 녹록지 않는 세상을 버틸 수 있는 힘이 된다. 어려운 상황이나 문제를 돌파하고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이제부터라도 누군가의 이름을 기억하고 따뜻하게 불러줘야겠다.
너는 나에게 이 세상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되는 거고,
나도 너에게 세상에 하나뿐인 유일한 존재가 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