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인생 변곡점은 어디일까. 아마도 임신과 출산, 육아로 이어진 지금, 현재 진행 중일 것이다. 아내의 삶은 임신하고 출산하면서 바뀌었다. 어쩌면 대한민국의 엄마로 살아가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일은 아닐까. 만약 첫째 임신하기 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아내와 신혼 기간을 충분히 보내겠다. 다시는 오지 않는 신혼을 아내와 온전히 보내지 못한 것이 지금도 마음에 걸린다. 가끔 집을 나가고 싶다는 아내의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조금 늦게 아이를 가질걸 그랬나. 3
반면 내 삶은 아내에 비해 바뀐 게 없다. 육아도 퇴근 후나, 주말에 아이를 돌보는 정도가 전부다. 예전처럼 교보문고나 알라딘에 가서 마음대로 책을 읽지 못해 아쉽고 동네 커피숍에서 조용히 음악을 들으며 생각할 시간이 부족해 정신이 없지만. 이 또한 아내에 비하면 엄살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버젓이 직장에 다닌다. 오히려 아내의 적극적인 지원과 도움으로 2020년 상담심리대학원을 졸업했고 동료 교육복지사들과 2년 동안 독서 모임을 할 수 있었다. 가끔이더라도 등산 모임이나 주말 저녁에 축구 하러 나간다. 돌이켜 보면 아내가 포기한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아내의 가장 큰 변화는 몸의 변화다. 지금도 튼살이 군데군데 보이고 붓기가 안 빠졌다. 연이은 출산으로 골반이 틀어져 있다. 아내가 임신 전 체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다. 아내가 예전 몸으로 회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7년 동안 세 아이의 임신과 출산, 육아를 했다. 출산 후 쉴 수 있는 것은 고작 산후조리원에서의 2주가 전부였다. 그마저도 둘째 때는 첫째를 봐줄 사람이 없어 2주도 못 채우고 퇴실해야 했다.
아내의 손목은 여전히 시큰시큰 아프다. 돌이켜 보면 아내는 손발이 찌릿찌릿 저려온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부풀어 오르는 가슴에 차오르는 젖을 시도 때도 없이 유축 해야 했다. 아내는 젖몸살로 힘들다고 했다. 죽고 싶단 말을 했을 정도였으니. 보통 산모는 10개월 동안 아이를 품고 있어 장기는 뒤틀리고 허리는 제대로 펴지 못해 고통스러워한다고 한다. 아내는 바닥에 등을 대고 눕다가도 허리 아프다며 옆으로 누우며 수시로 자세를 바꿨다. 허리 통증으로 편히 누워 잘 수도 없었다. 아내는 뭉탱이로 빠지는 머리카락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매일 아침 화장실 배수구에 시커멓게 빠져 있는 아내 머리카락을 보면 짠하다.
비단 몸의 변화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내가 경력 단절된 지 8년이 되었다. 임신으로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찾기도 바쁜 20대에 출산과 육아를 위해 기꺼이 직장을 포기한 것이다. 계약직으로 육아 휴직이 보장되지 않은 직장이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경력 단절로 내몰린 격이다. 솔직히 공무원이 아니고서야 육아 휴직에 차별이나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대한민국 엄마의 어쩔 수 없는 현실 아닌가. 자기 일을 찾고 역량을 키울 꽃다운 20대에 아내는 자기 일을 찾기는커녕 아이를 돌보느라 정신없었다. 왜 아이 키우는 엄마들에게 “육아할래? 일할래?” 물어보면 다들 일하겠다고 하겠는가.
아내는 외출도 마음 편히 하지 못한다. 생각해보면 아내는 혼자 외출 적이 없다. 친구들을 만나더라도 첫째와 둘째 중에 꼭 한 명은 데려간다. 아내는 셋째가 태어나고 나서 혼자 나가는 것을 되레 미안해한다. 아무리 친구지만 모처럼 만나는 자리에 아이를 데려온다면 나라도 만나고 싶지 않겠다.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과의 관계는 점점 멀어진다. 출산 후 아내의 관계망이 쪼그라들고 있었다.
아내에게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아이 없이 조용한 시간을 언제 가져봤는지. 커피 한잔 마시는 3분도 아내에게 사치다. 하루종일 아이를 보고 있으면 정작 자기는 밥때를 놓치기 부지기수다. 모처럼 앉아서 밥을 먹으려고 하면 잘만 자던 아이도 깨서 보챈다. 며칠 전 아내가 하도 우는 둘째 때문에 도저히 밥을 못 먹겠다며 영상 통화를 걸어왔다. 둘째가 핸드폰에 집중하는 사이 허겁지겁 밥 먹는 소리가 핸드폰 너머로 들렸다. 왜 아이 끼니 챙겨주다가 입맛이 뚝 떨어지겠는가. 주말 끼니를 챙겨 먹여 보면 알 것이다.
아내는 임신과 출산 후 자기 삶을 내려놓고 희생하고 있다. 아내를 위해 나는 무엇을 포기할 수 있을까. 적어도 아이 때문에 자기의 삶을 포기하고 희생하지 않도록 지켜줘야겠다. 남편으로서 아내가 다시 꿈을 꿀 수 있도록 격려하고 지지해야겠다. 한창 이쁠 나이에 늘어진 티, 화장기 없는 얼굴,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피곤까지 어깨에 짊어진 아내를 더 아끼고 사랑하는 수밖에 해줄 것은 없다. 남편의 관심과 사랑, 따뜻한 말 한마디가 아내를 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