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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i파파 Jun 25. 2020

저기요, 여기 딸바보 아빠 한 명 예약이요

6월 11일, 임신 16주 산부인과 정기 검진하는 날이었다. 셋째의 성별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전날부터 밤잠을 설쳤다. 셋째를 임신하고 온통 나의 관심사는 셋째의 성별이었으니 오죽하겠는가. 그날은 셋째가 예쁜 고명딸 일지 아니면 아내를 도울 삼총사 일지 확인할 수도 있는 일생일대의 순간이었다.


아내는 아들이 키우는 게 쉬울 것 같다며 차라리 아들이었으면 했다. 알고 보니 아내는 태어나지도 않은 딸과의 감정싸움, 힘겨루기부터 걱정했고 딸 키울 자신이 없다고 했다.


반면 나는 겉으로는 아닌 척했지만 딸을 바랐다. 솔직히 아들 두 명을 키워봤으니 족하지 않나, 만약 셋째까지 아들이라면... 의사 선생님이 아들이 틀림없다고 했을 때 생각하기로 했다.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내 마음속의 셋째는 딸이었다.


나는 지난 검진 초음파 영상을 보고 딸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냥 예비 딸바보 아빠의 직감이랄까. 느낌이 그랬다. 초음파 영상으로 보이는 아이 모습이 이뻤다. 무의식이 무서운 게 초음파 영상을 보자마자 다리 쪽을 먼저 봤다. 나는 보자마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초음파 영상에 성기 같아 보이는 부분이 굴곡 없이 매끄러웠다. 초음파 영상 속의 아이 움직임은 영락없이 그냥 딸의 모습이었다.   

나는 진료실에서 딸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차분하고 조용했던 진료실의 정적을 깨고 말았다. 딸이냐며 의사 선생님을 재촉했지만 의사 선생님은 아직 모른다며 말을 아꼈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명의였다.


진료를 마치고 병원을 나선 후로부터 아내에게 아무래도 셋째는 딸 같다며 좋아했다. 보석 꿈이 태몽이 맞나 보다고 깐죽거렸다. 아내는 그런 내가 기가 찼는지 몇 주 후면 고추가 보일 거라며 저주를 퍼부었다.   


셋째가 딸이길 가장 바랐던 이유는 아내가 이다음에 나이 들어서 딸 키우는 재미를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다. 나중에 아무리 딸 같은 아들이라도, 아내 바보 남편이라도 해소해주지 못하는 부분을 딸이라서 가장 이해해줄 것 같았다. 내가 아들이지만, 아들도 아들 나름이겠지만 아들 키워봤자 다 소용없다. 만약에 셋째가 아들이었다면 내가 그 몫을 하면 그만이었지만. 분명 내 손에 못 미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훗날 엄마도 여자임을 아는 딸이 아내 옆에서 세심하게 챙겨주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주변 지인들에게 임신 16주면 성별을 확인할 수 있는지 물어봤다. 돌아오는 대답은 있다 없다 반반이었다. 그럼에도 병원 가기 전 나의 촉은 달랐다.


역시 예비 딸바보 아빠의 촉이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초음파 영상을 유심히 보더니 의사 선생님이 "딸이네요!" 성별을 알려줬다. 의사 선생님이 말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분명 마스크를 쓰고 있었는데 입가의 미소를 감출 수 없었나 보다. 아내는 나를 보고 왜 웃냐며 어이없어했다.


아내는 의사 선생님에게 제차 "아들 아닌가요?, 나중에 얼마든지 아들로 바뀔 수 있죠?" 의도를 숨기고 다시 확인했다.


병원에서 나와 아내는 긴가민가 했다고 얼떨떨했다. 아내는 아들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했다. 끝내 성별 오진으로 유명한 병원이라며 딸인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마 아내는 지금도 막달에 고추로 바뀌길 원하겠지만.


순간 상상을 해봤다. 정말 막달 검진 때 의사 선생님이 "딸인 줄 알았는데, 아들이었네요." 한다면...


나는 고소하리라.


아내는 딸이라 좋아하는 내가 눈꼴사납다고 했다. 벌써부터 딸이라서 벌벌 거리는 모습이 내키지 않나 보다. 딸과 커플 옷을 입겠다고 했더니 아내의 눈총이 따가웠다.


여보! 걱정하지 마요. 딸바보 이전에 아내바보요. 이 약속 평생 지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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