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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i파파 Oct 05. 2020

아빠도 엄마 좀 안아보자

  뽀로로에 정신 팔린 틈을 타  아들 몰래 조심조심 안방으로 들어갔다. 뽀로로를 보는 동안만이라도 아내와 같이 누워있으려고 했다. 비밀요원, 007 작전을 방불케 하는 긴장감이 흘렀다.   


  아내는 병원에서 옴짝달싹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잠깐 와있었다. 옆으로 누워 있는 아내 등 뒤로 살며시 다가가 안았. 아내 등 뒤에서 끌어안으며 임신으로 부른 배를 스담스담 했다.


  오랜만에 '찐이야!' 태명을 불렀다. 배가 꿀렁, 찐이는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반응을 보였다. 헉! 찐이야 아빠 목소리를 잊지 않았구나. 아내는 찐이가 컸다며 누워있으면 손이나 발로 배를 쭈욱 민다고 했다. 아내는 확인해주고 싶었는지 내 손을 끌어당기며 자기 배에 갖다 대면서 '찐이야!' 불렀다.  


  아내가 입원했지만 두 아들 독박 육아하느라 병실에 간 일은 손꼽는다. 태교로 마사지는 고사하고 태명 조차 부르지 못했다. 입원하는 날이 하루하루 늘수록 아내와 찐이에게 미안한 마음도 차곡차곡 쌓였다.


  미안한 마음이 커갈수록 몸과 마음 지쳐갔다. 며칠 전 으스스 한기를 느꼈고 두통과 미열로 머리가 지끈거렸다. 뭐 하루 만에 멀쩡해졌지만 말이다.(아무래도 나까지 아프면 안 된다는 정신력으로 버텼는지 싶다)  


  아이들이 엄마가 필요하듯 나도 아내가 필요했다. 아내의 살결이 닿는 순간, 그간 아내 없이 버텨온 시간 모두를 위로받는 것 같았다. 그냥 아내 품 속에 잠들고 싶었다.


  그 순간 "으으으" 정체불명 웃음소리에 놀랐다. 소리가 나는 방문 쪽을 쳐다봤다. 장난꾸러기 둘째, 해방꾼이 나타났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둘째를 보고 흠칫했다.


  20개월 된 둘째가 뭔지 모를 다 안다는 표정으로 아내와 나를 지긋이 쳐다봤다. 미소 짓는 둘째 표정에 순간 멈칫, 주춤 아내에게 했던 스킨십을 멈췄다. 몰래 하다 딱 걸린 느낌이었다.


  둘째가 씨익 웃으며 거실로 갔다. 둘째의 행동에 뭔가 기분이 묘했다.  


  이내 둘째가 빼꼼 얼굴을 다시 내밀더니 거실로 사라졌다. 이윽고 첫째를 데리고 왔다. 첫째는 뭔가 더 안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아내 품속에 파고들었다. 한참을 안방에서 나가지 않고 첫째와 둘째가 뒹굴며 놀았다.


  억장이 무너졌다. 눈치 없는 녀석들, 두 녀석 눈치 보느라 바빴다.


  첫째에게 어서 거실에 가서 뽀로로를 보라고 으름장을 놨다. 보여주기로 한 20분이 지금 이 순간에도 흐른다며 TV를 볼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고 능청스레 둘러댔다. 지금 생각하면 은근 협박이었다.


  결국 나의 007 작전은 실패로 끝났다. 첫째와 둘째의 성황에 못 이겨 강제로 거실에 나오게 됐다. 언제쯤 애들 눈치를 보지 않고 아내를 안아보려나. 셋째 찐이까지 태어나면 몇 개월은 독수공방에 님 기다리듯 할 텐데 벌써부터 걱정이다.


  애들아! 아빠도 엄마 좀 안아보자. 아빠도 엄마가 필요하거든?

부디 한 달만 더 버티어 모두 건강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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