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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i파파 Dec 05. 2020

21개월 아들의 말은 영어 듣기 평가 수준

 학창 시절 영어 듣기 평가 시간이 되면 찍었다시피 했다. 도통 알아들을 수 있어야지.  공부 안 한 탓이 크지만. 아무리 영혼까지 끌어 모아 귀 기울여도 아는 단어는 가뭄에 콩 나듯  단어 되지 않았다. 선생님은 문맥상 흐름으로 문제를 풀라고 팁을 줬지만 못 푸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요즘 딱 그렇다. 21개월 된 둘째의 말을 듣고 있으면 가끔 무슨 말인가 알아듣지 못할 때가 많. 19개월 둘째 언어는 마치 고등학생 때 영어 듣기 평가 문제를 푸는 것처럼 난감. 나는 둘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둘째는 알아듣지 못하는 아빠 때문에 서로 답답해한다.


 둘째가 21개월이 되니 부쩍 말하는 게 늘었다. 말귀도 잘 알아듣는다. 아는 단어도 많아졌고 표현하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아들의 언어 뇌는 지금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첫 음 아니면 끝 음만 말하거나 단어를 말해도 발음이 뭉개져서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뭐라고 하는지 알 수 없다. 앞뒤 상황과 문맥으로 눈치껏 때려 맞춰야 한다. 


 어느 날 둘째를 하원 시키고 집으로 가는 데 내 품에 안긴 둘째가 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풍. 풍. 풍.' 말했다. 워낙 다급한 목소리로 말해서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둘째는 말귀를 못 알아듣는 내가 답답했는지 다시 힘주어 풍. 풍. 풍. 손가락질했다. 그래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눈치껏 맞춰야 한다. 꼭 맞춰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맞출 때까지 알려줄 테니. 아들이 가리킨 곳을 봤더니 어린이집 놀이터였다. 놀이터에 풍과 관련된 것을 빠르게 찾았다. 눈알을 빠르게 굴리며 풍. 풍. 풍. 도대체 뭘까 단서를 찾으며 아들이 낸 수수께끼를 풀었다. 아들의 손끝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였다. 동물들이 그려져 있었고 동물들 손에는 풍선이 들려있었다. 그제야 아들에게 "아! 풍선." 리엑션을 해줬다. 나도 아들도 웃었다.


 최근 들어 둘째는 세상 모든 것이 궁금하다. 지적 호기심이 생긴 것일까. 사물의 이름이 궁금한지 길을 가다가도 책을 보다가도 손가락질하며 "뭐야! 뭐야!" 묻는다. 


 지금 둘째 세상을 향해 손 내밀고 있다. 친해지노력 중이다. 하늘에 뭉개 뭉개 핀 구름과 밤하늘을 총총 빛는 별, 달토끼가 사는 달을 좋아한다. 하늘만 보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구(구름), 딸(달), 뼈얼(별)을 말한다. 어린이집에 가는 길에 탐스럽게 열 감을 보고 처음 을 알았다. 노래와 책을 좋아해 토실토실 아기 돼지 노래를 즐겨 부른다. 엄마 곰은 날씬해 노래를 잘 못 배워 아내를 보고 엄마는 뚱뚱해라고 말하지만 말이다. 


 언제 컸나 싶을 정도로 부쩍 커버린 둘째. 아가가 동생을 맞이해 어느덧 오빠 노릇을 하고 있다. 어린이집에서 오자마자 찐. 찐. 찐. 부르며 아기 침대로 달려간다. 아기 침대에 매달려 동생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둘째, 자기가 분유를 먹이겠다고 젖병을 잡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모른다.


 이제 조금만 더 크면 몇 단어를 이어 붙이고 문장으로 이야기할 텐데 그 시간도 금방 돌아올 것 같아 하루하루 아쉽다. 둘째가 어떤 말을 하는가 집중해서 듣고 헤아리려고 노력하는 지금이 좋다. 매일매일 둘째가 내는 수수께끼가 기다려진다. 내일은 또 어떤 문제를 내려나.

어린이집 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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