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엉덩이로 쓴다는 말이 있다. 무릎을 탁 치는 영감, 번뜩이는 순간만 기다리면 글을 쓸 수없다. 첫 문장부터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모를 때도 일단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어야 한다. 술술 써 내려가든 덜컥 첫 문장부터 막히든 일단 뭐라도 쓰라고 했다.
작가들은 자기 만의 글쓰기 루틴이 있었다. 루틴이 있어야 매일 습관처럼 뮤즈와 상관없이 멈추지 않고 글을 쓸 수 있다고 조언한다. 어느 작가는 술에 취해도 자기가 정한 글 쓰는 시간을 지켰다고 했다.
나만의 글쓰기 루틴을 찾아 봤다. 엉덩이를 붙여 글을 쓸 시간이 없다. 누구는 퇴근길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글은 쓴다고 하지만 퇴근하기 무섭게 두 아들 하원 시키러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부리나케 가야 한다. 두 아들이 잠들 때까지 몸으로 놀아야 한다.
하버드 학생들은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고 어떤 작가는 새벽 5시에 일어나 글을 쓴다고 한다. 하지만 저녁 11시에 마지막 분유를 먹는 셋째를 트림시키고 재우고 나면 자정이 넘는다. 새벽에 글 쓰는 루틴을 만들었다간 큰일 난다.
아무래도 새벽에 글 쓰는 루틴은 특별 새벽 기도회처럼 특별한 날에 드문드문하지 않을까. 일 년에 한 번이라도 해봤으면. 어쩌면 세 아이 모두 저녁 9시 이전에 잠들어야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시간, 저녁 8시 30분. 아내가 두 아들을 재우러 들어갔다. 셋째는 마지막 분유를 먹는 저녁 11시까지 깨어있다. 잠들었다가도 10분 만에 앵하고 깬다. 기저귀를 갈거나 놀아주기 바쁘다. 셋째가 잠들지 않으면 글 쓰기는커녕 책 읽기도 힘들다.
다음 이미지 다둥이 아빠의 글 쓰기 힘은 아기띠에 있다. 두 아들이 아내와 함께 자러 간 사이 아기띠를 메고 책장 앞으로 간다. 마스킹 테이프를 손가락 마디 길이로 10개 정도 자른다. 잡아 찢는 수준이다. 아기띠를 멘 상태로 서성이며 책을 읽는다. 사막에서 오아시스 찾은 사람처럼 목마름이 해소되는 기분이다. 인용하고 싶은 글이나 핵심 문장, 끌리는 문장에 준비했던 마스킹 테이프를 붙이면 30분 책 읽기에 성공한다.
하지만 요즘은 그마저도 힘들다. 아기띠에서도 금방 깬다. 아무래도 저녁 11시까지 놀아야 하는 것은 셋째의 루틴이었을 것이다.
사실 글쓰기는 성격에 맞지 않다. 게으르다 아니 느긋하고 여유가 있다. 일하는 것보다 놀고먹는 것을 좋아한다. 육퇴 후 거실 소파에 누워 곁눈질로 tv를 보며 채널을 돌리는 것이 성격에 맞다. 하루 종일 집 밖을 안 나가고 빈둥거릴 수 있는 성격이다. 늘어지게 늦잠 자고 밤늦게까지 드라마 보면서 야식 먹어봤으면 소원 없겠다. 이왕이면 일하지 않고 경제적인 자유를 누렸으면 하는 허왕된 꿈도 꾼다.
성격에 맞지 않고 글쓰기에 집중할 수 없는 환경이지만 나름 글쓰기 루틴을 만들기 위해 고심한다. 남들처럼 1시간 이상 엉덩이를 붙여 글을 쓰지는 못한다. 하지만 매일 30분 틈틈이 기록해보겠다. 저녁 9시에서 11시 사이, 매일 30분 책을 읽거나 글을 써봐야지. 남들보다 느려도 남들처럼 앞으로 나갈 테니 말이다.
앗! 어제는 아기띠를 메고 미스 트롯 2 결승전을 보고 말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