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도 혼자만의 사긴이 필요하다
세 아이 아빠에게 혼자만의 시간이란, 보다 전투적으로 사수해야 하는 것이다. 살면서 자신만을 위한 시간은 필요하다. 소진된 나를 위로하기도 하고 다시 시작할 힘을 주기 때문이다. 기계도 몇 날 며칠 계속 가동할 수 없다. 새로운 원료를 채워야 하고 기름칠은 물론 고장 난 부품을 교체해줘야 오래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은 오죽하랴. 나만의 개인 공간을 갖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세 아이 아빠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란 쉽지 않았다. 혼자 여행은 고사하고 이제 한 달에 한 번 커피숍이나 서점에 가는 것도 눈치 보인다. 세 아이 아빠의 혼자만의 시간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염치의 문제인 것이다. 가끔 염치없이 세 아이를 아내에게 맡기고 커피숍이나 동네 서점에 가서 책을 읽지만 안절부절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다. 미안한 마음에 그만 일어서고 마는데.
그러다가 갑자기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지면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뒤도 안 돌아보고 집을 나서는 것은 혼자만의 시간이 목말라서다. 커피숍에 혼자 앉아 생각에 빠지거나 서점에 가서 책만 봐도 기분전환된다. 뭔지 모를 답답함과 축 처진 기분에서 벗어날 수 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평정심을 유지하고 마음의 평안을 되찾는다. 두세 시간이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때는 다르다. 아이를 볼 때 마음이 한결 여유롭다.
하지만 코로나19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법이 달라졌다. 어차피 집 밖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못 가질 바엔 집안에서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로 생각했다. 보다 전투적으로 말이다.
요즘 빨래를 털고 개는 재미에 빠졌다. 건조대에 있는 빨래를 사수한다. 빨래를 갤 때 방해받고 싶지 않아 방문을 잠근다. 그때마다 지금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는다. 마른빨래를 창밖에다 툭툭 털 때마다 먼지와 함께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기분이다. 빅마마 노래를 크게 틀어 놓고 너저분하게 늘어놓은 빨랫감을 보기 좋게 갤 때 뭔지 모르게 개운하고 뿌듯하다. 널려 있는 복잡한 마음을 빨래와 함께 정리하는 것 같다. 시끄럽게 틀어놓은 노래를 들으며 흥얼거리는 15분의 시간이 마냥 즐겁다. 혼자만의 시간은 자투리 시간으로도 충분하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에 아이들 낮잠 시간이라도 겹치면 행복하다. 그때 아이들이 듣던 동화나 만화 주제가를 끄고 최신 가요를 튼다. 촌스럽게 90년대 락발라드를 듣지만, 아이는 잘 때가 제일 이쁘다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차를 타고 가족 나들이를 가면 나도 모르게 아이들이 곯아떨어지기만을 기다린다. 저녁 설거지를 사수하려는 것을 보면, 혼자만의 시간은 언제나 목마르다.
돌이켜보면 육아 스트레스는 가정 내 불필요한 긴장감을 일으킨다. 마음에 여유가 없을 때 아이들에게 짜증 내고 화내지 않는가. 부정적인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것이다. 스트레스는 가정 내 긴장감만 높이고 아이들에게 이유 없이 짜증 내고 화를 내게 만든다. 공들였던 아이들과의 관계는 틀어지고 부모의 일관되지 않는 반응에 아이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악순환의 고리가 생기는 것이다.
육아와 집안일에 지친 아내(남편)에게 휴가를 주세요.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아이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지고 태도가 일관된다. 엄마, 아빠에게 혼자만의 시간은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을 지키는 힘이다. “오늘 나가서 시간 보내.” 아내의 휴가는 행복 육아의 선순환을 만들었다. 다음 휴가를 위해 더욱더 잘하게 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