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이러다 어물쩍 다음 해로 넘길 것 같아 미루고 미루었던 건강검진을 받았다. 솔직히 젯밥에 정신이 팔렸다. 건강검진보다 공가를 내고 하루 쉬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 전날까지만 해도 건강검진이 끝나면 뭐 할까 고민했으니 말이다.
“이제 나도 적은 나이가 아니구나!”
더는 자기 관리를 미뤘다간 큰일 나게 생겼다. 최고 혈압이 179가 나왔다. 최고 혈압 수치를 보고 간호사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간호사는 원래 혈압이 높았냐고 물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언제 마지막으로 혈압을 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예전 기록을 살펴보던 간호사가 2년 전은 정상 범위 안에 있었다고 알려줬다. 간호사는 5분 뒤에 다시 재자며 편하게 앉아 심호흡하라고 했다. 기다리는 5분 동안 혼자 앉아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도대체 2년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날 밤, 혼자 거실에 앉아 고혈압 증상을 찾아보았다. 언제부터 혈압이 높아졌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고혈압 증상을 보다가 빈뇨가 눈에 들어왔다. 고혈압이면 빈뇨가 생긴다고 한다. 생각해 보니 몇 달 전부터 새벽에 깨 화장실을 들락날락했다. 새벽에 깨다 보니 피곤했다. 하도 불편해서 일부러 저녁 7시 이후부터는 물을 마시지 않았다. 뒷골이 뻐근하고 당기는 듯한 느낌 말고는 별다른 증상이 없었고 며칠 잘 쉬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그러다 문득 아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며칠 전 아내가 “요즘 왜 이렇게 예민하냐”라며 한마디 했었다. “오빠가 생리하는 줄 알았다.”라며 걱정했다. 고혈압이면 예민해진다는데, 그래서 요즘 예민했나 뜨끔했다. 그러고 보니 부쩍 아이들에게 이유 없는 짜증이 늘었다. 예전에는 그냥 지나갔을 일에 대해 화를 내고 혼냈다. 고혈압 때문에 예민해진 건가, 예민해져서 고혈압이 생긴 건가. 어쩌면 알게 모르게 몸이 이상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곧 정상으로 돌아오겠지. 매일 습관처럼 마시던 믹스커피를 끊었다. 육퇴하고 마시던 맥주 한두 캔도 쳐다도 안 봤다. 평소 아이들 재우면 거실에 누워 자정까지 TV를 봤다. 고혈압에 걷기 운동이 좋다고 해서 TV 채널 돌리는 삶을 과감히 청산했다. 집 근처에 있는 학교 운동장에 나가 1시간 이상 걸었다. 하지만 불편한 느낌은 가시지 않았다. 가끔 가슴에 통증을 느꼈다. 심장이 간질간질, 답답함을 느꼈고 새벽에 손이 찌릿찌릿 저렸다. 며칠의 노력으로 한 번 높아진 혈압을 정상 수치로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축하해요, 혈압약 세계로 입문한걸!”
“한 번 먹기 시작하면 평생 먹어야 해요.”
기저질환이 있는 마흔 가장이 됐다. 나이가 지긋이 든 약사에게 환영받으며 혈압약을 처방받았다. 뭔지 모르게 씁쓸했다. 뇌졸중과 심근경색으로 죽을 수 있다는 불안감과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게 생겼다, 아내와 아이 셋을 남겨두고 어떻게 먼저 갈 수 있겠는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아내보다 하루라도 더 살려면 이제부터라도 건강을 챙겨야지. 앞으로 죽을 때까지 식단 조절과 규칙적인 운동은 물론, 마음 챙김의 과제를 받았다. 더 아프기 전에 몸과 마음을 챙기자. 행복한 가정은 건강으로부터 시작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