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기자로 산다는 건
신문고를 두드리듯 세상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불만 거리를 해결하느라 이리저리 통화하고, 뛰어다니다 보니 깨달은 것들에 대하여 혼자만 알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장의 기사를 써내놓고는 어디로 투고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고민하던 중 오마이뉴스를 만났다. 별다른 절차 없이 세상을 향한 신문고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보고, 듣고, 깨달은 것만으로 기사를 작성한다는 사실은 밤낮으로 직접 현장으로 뛰어나가 취재를 하는 기자님들의 '사실적인 증거'에 70% 이상 의존하여 풀어가야 하는 일들이었다. 혼자 깨달은 사실이 기사로 작성되기까지의 가장 기본적인 과정이었다. 그러다 보니 작성한 대다수의 기사들에 대하여 100%확신을 갖고 작성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한 가지 기사를 작성하며 즐거운 일은 아주 가끔 '기사가 조금은 도움이 됐다'는 일방통행의 신호들이 깜빡이처럼 전해질 때다. 또 알음알음 연결되는 끈끈한 유대감(?)을 깨달을 때면 절레 기운이 솟기도 한다. 이러한 신호들이 미디어로, 거리로 종횡할 때면 어쩐지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고민하며 또 한 걸음 물러서게 된다.
이제 기사를 작성한 지 약 1여 년이 지나서고 있다. 그동안 작은 파동이지만, 기사를 쓴다는 것의 책임과 무게를 몸소 실천하며 '시민 기자'로서 자신의 할 말을 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간혹 기사로 쓴 내용들이 웃음거리처럼 전해질 때면 글을 쓰는 건지, 그저 눈치 게임의 승자로서 실력을 뽐내기에 급급한 건지 스스로도 억울하게 구분이 가지 않을 때가 있다. '살다 보니 그런가 보다'하며 웃으며 넘기고 있다.
개인의 견해인지 모르겠지만, 기사를 적으며 오며 가며 스치는 사람들의 반경은 더 넓어져 가고 있는 의심이 들 때가 있다. 평범한 일상이 다르게 다가설 때를 두고 기자와 작가라는 길을 막 걷게 된 시점에서 어떻게 바라보는 것이 옳은 것일까 고민하게 된다. 이런 고민들과 반비례하게 아이러니하게도 통장의 잔고는 텅 비어간다.
언젠가 이 길에 들어선 일에 대해 웃으며 맥주 한 잔 할 수 있는 날을 고대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