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밤 길을 걷는다.
이상한 기분이다.
걸음마다 새겨지는 그녀의 존재를 확인한다는 것은.
커다란 구멍을 들추어 보듯 나는 별로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누군가의 젊은 날의 한 가운데 서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왜 하필 그녀였을까. 그녀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나는 어떤 존재였을까.
신호를 기다리는 사거리의 횡당 보도에서 서성인다.
흐릿한 그녀의 시선 속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나를 발견한다.
나는 명확히 따로 분류되어 있었다.
그것은 참으로 기이한 현상이었다.
나는 텅 비어버린 몸으로 중심을 지탱하는 감각에 의지하여 걷는다.
어두운 밤은 방향을 잃은 채 굳게 다문 입으로 청춘의 어귀를 맴돌았다.
나는 높이가 어깨너비까지 오른 덤불숲으로 들어선다.
도무지 습득되지 않는 언어와 밤을 에워싸는 풀벌레 소리만이 계절에 잔류한다.
보기 드물게 고요한 밤이다.
열병처럼 써내려갔던 여름 날의 글들이 떠올랐다.
잘 맞지 않는 소설 속 어귀들을 거르고 스미다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잘못 나열한 것은 무엇일까?
시원한 바람이 몸을 투과한다.
숲은 사유를 묻지 않는다.
나는 미친듯이 나를 찾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