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그저 세간에 떠도는 이야기 속 인물의 하나로 어쩌다 끌려나온게다.
정답처럼 그려진 그녀는 손에 쥐어준 답안지를 읽지 않는다.
그게 정상이다. 소설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이야기를 현실로 견디는 이는 많지 않다.
애초에 현현하는 실체라고 한들 믿을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언어는 인간이 주변 환경 속에 존재하는 여러 사물을 나타내기 위해 개별적인 음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사용하는 언어는 때론 지위를 드러내기도 한다. 왜 그녀일까?
유물을 발굴할 때와 같이 검열되지 않은 기분을 잠시 설명해볼까 한다.
누군가를 위해 고르게 다져진 땅을 조심스레 헤치는 일은 기껏해야 호기심이 강한 자의 영역이었다.
공을 들이는 일이 즐겁다. 열중하는 여백의 시간 말이다.
이제서야 고백하지만 발굴은 알아보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이것이 고고학이다.
그녀의 언어는 모어라기 보다 모국어에 가깝다.
모국어는 단어가 지닌 순수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모어가 아닌 언어를 두고 차를 우린다. 길고 복잡한 서사다.
답안지를 한참이나 바라보다 창 밖을 바라본다.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고요히 달아오른 주전자의 뜨거운 열기에 덜그덕 하고 춤을 춘다.
그녀는 좀처럼 습득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언어란 습득하는 일이다. 모어란 하나로 엮이지 않는다. 누군가 알려주는 일도 아니다.
환경은 시시각각 새로운 모습을 띤다.
이제 막 눈을 뜬 모국어는 분주하다.
더 듣고 싶다.
언어는 때론 폭력성을 지닌다.
처음 입을 떼는 이들이 있을 법한 일을 두고 으레 그렇게 이야기 한다.
그러니까 삶은 그런 것이 아니다. 세월이 읊는다.
나는 버르장 머리를 고치려 한 여인의 유희를 없앴다.
그녀는 모어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