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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tter B Oct 07. 2024

고래를 찾아서





칼을 잘 아는 움직임이었다.

그가 그랬다.

칼날은 정적을 뒤흔드는 법이 없었다. 

어둠을 가르는 서슬마저 공기의 공간을 거스르는 일이 없다.

허공을 가르는 일이었다.

오차를 찾기 어려운 간결한 놀림이었다.

나는 본능에 따라 숨을 죽인 채 지배자의 파동을 관측한다.

조금 황당한 일이었다.

그가 기척을 느꼈는지 이제껏 지켜오던 정적은 깨어졌다.

나는 서슬이 막 지나간 허공을 재빠르게 확인했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 가능하면 자세는 바꾸지 않는 것이 좋겠군요.


분위기에 압도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낯이 익은 그는 종전의 모습이라곤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정중한 태도로 요청했다. 나는 이런 식의, 낯선 방문객의 요청은 대체로 받아들이지 않지만 자세를 곧게 바로잡는 것으로 화답했다. 침묵은 길지 않았다. 곧바로 깊은 잠에 빠져 들었기 때문이다.  


잠에서 깨었을 때 자세는 흐뜨러짐이 없었다. 그러나 그런 날에는 온몸이 빳빳하게 굳어 있거나 기운이 없는 경우가 대게였다.  나는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이런 시간들을 대할 때 항시 정제된 태도로 일관했는데, 

그것은 공을 들여 만들어진 모양새가 아니어서인지 갑갑함을 불러 일으키거나 하지 않았다. 나는 엄밀하게 말해서 적잖이 손해를 보는 입장이었지만 기이하리만치 매번 동질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억울한 일이었다.


- 속력이 너무 빠릅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나는 요청되어진 제약들을 순순히 따라 이동했다. 그것은 유치하다 싶을 정도의 장난과도 같았지만, 개인의 고유 영역을 보존한다는 최초의 원제에 대한 이해 관계는 예상치 못한 의외의 신뢰감을 형성해 주었다. 나는 그가 제시한 요청을 지키는 것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나는 그러한 사실을 깨닫지는 못하였다. 답답한 것은 그 사실을 이해하지 않고는 어떤 논제도 땅으로 고꾸라지기 일수였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나는 의식하는 천천히 이동했다. 그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시간이 걸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투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기본적인 것에 상당히 충실한 타입이었기 때문에 기본적인 것이 지켜지지 않는 일에는 참 많은 투정을 부린 것만 같다. 투정을 부리고 난 뒤에는 항상 일종의 체벌이 뒤따랐는데, 나는 이런 부분에서 다시 순순히 따르는 편이었다. 그런 시간들은 도통 견뎌내기 힘든 엄청난 고통을 동반하곤 했는데, 갈구하던 명쾌한 쾌락이 아니었던 것만은 분명했다. 이토록 기본적인 것이 있을까? 아무튼 관계란 것이 그랬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 흉부 깊숙이 박힌 창살을 발견했다. 

나는 그가 손에 쥐고있던 창살을 기억한다.

고래를 잡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얼핏 반경이 1m는 족히 되어 보이는 거대한 고래의 하관 앞에 서 있었다. 

나는 영 그런 것들을 믿지 않는 축에 속하는 터라 가까이 다가서 면밀히 들여다보진 못하였지만 그것은 적잖이 상해 보였는데 잡힌지 대략 일주일 가량의 시간이 소모된 듯 지저분한 것 이었다.

그의 주변으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나는 이불을 끌어 당기고는 침실 깊숙이 더 기어들어 섰다.

그는 기척을 눈치챈 듯 보였지만 이내 구경꾼들 사이로 사라져 갔다.


나는 곧바로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 그래서 고래는 결국 어떻게 된건가요?

- 아, 그 폭력의 피해자 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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