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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tter B Oct 07. 2024

어느 예술가






나는 이제껏 그렇게 고집스러운 사람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하마터면 고래를 찾으러 간 사람들과 혼동할 뻔 했으니 영락없이 속은 셈이다.

나는 그가 설명하고자 한 일에 대해서 그가 떠나고 시간이 꽤나 지나서야 깨달았다.

그가 그토록 설명하고자 했던 것을 말이다.

나는 육교 위에 서 있다.

12개의 차선이 교차하는 지점에 자리잡은 것은 반경 약 50m의 일명 자살 육교이다.

언젠가 입 안에서 굴렀을 법한 문장들이 길게 이어지는 육교의 원형을 따라 레일 위에 새겨져 있다.

내뱉지 않을 것만 같다.

차가운 레일 위로 괜한 손을 얹어 본다.

그가 이틀이나 꼬박 곁에 머물렀다.

머무는 동안 그는 나에게 끝이 날카로운 정(丁)이 여러 개 달린 원뿔의 조형물을 선사했다.

정도가 무딘 것이 사람을 헤치지 않을 정도였지만 나는 그것이 흉구마냥 편치 않았다.

아마도 그와의 관계였을까?


-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나요?

- 언젠가는.


나는 조형물을 받아들고는 커다란 원을 그리던 육교가 떠올랐다.

사방으로 뻗친 정(丁)이 가시처럼 돋아난다.

머리를 죄여오는 것은 아마도 그 탓이다.

그는 소파 위 새로 깔린 시트를 흘끗 보고도 끝내 앉지 못하는 신사다.

생전 처음 생긴 가려움증을 해결하려다 처방받은 처방전이다.

나는 어려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는 사이 그는 떠났다.


나는 레일 위에 적혀 있던 쓰이지 않을 문장들을 떠올렸다.

오랜 탁자 위에는 하얗게 먼지가 내려앉은 눈에 잘 띄지 않는 화병이 놓여있다.

덩그러니 놓인 화병 안에는 정(丁)으로 된 향나무가 그득 채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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