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박사논문(2006)을 쓸 때부터 주장한 내용을 다시 간단히 정리하고자 한다. 우선 처음으로 '복잡계 신화'라는 표현을 써봤다. 내가 신화라고 부르는 것은 복잡계에 대한 얘기를 하면 거의 빠짐 없이 나오는 아래 문장이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 [주장1]
이 내용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처음 한 말이라고 추정되지만 진위는 모른다. 이 문장은 물리학의 기본 철학인 환원주의에 대한 대립으로서 발현 현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좀 이상하다. 어떻게 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클 수 있지? 전체는 부분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 아닌가? 사실 '부분'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보자. 물분자들이 모여서 액체인 물이 되기도 하고 기체인 수증기가 되기도 한다. 물분자가 '부분'이라고 한다면 물분자에 대한 지식만으로 곧바로 물분자의 집합이 이루는 상태(액체 또는 고체)를 구분할 수는 없다. 보통 이런 식으로 위 문장을 이해 또는 설명하곤 한다. 즉 물분자 각각이 '부분'이고 물분자 집합의 상태가 '전체'의 속성이 된다는 식이다.
나는 이런 해석이 못마땅했고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내가 제안한 해석은 다음과 같다.
"전체는 부분들과 그들 사이의 상호작용의 합과 같다." [주장2]
더 자세한 내용은 내 박사논문의 서론(영어)이나 2010년에 한겨레 사이언스온에 썼던 글(한국어)을 참고할 수 있다. 즉 부분 사이의 상호작용을 부분으로 해석하면 "전체는 부분의 합과 같다"가 된다. 만일 부분 사이의 상호작용을 부분이 아닌 것으로 해석하면 [주장1]은 여전히 맞지만 그래서 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얼마나 더 큰지,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지를 말해주지 않는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주장1]보다 [주장2]가 더 정확히 현상을 기술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느쪽이든 [주장1]은 복잡계 연구를 신화화할 뿐 과학적이지는 못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물분자의 집합이 액체가 되느냐 기체가 되느냐는 물분자 사이의 상호작용에 달려 있으므로 발현 현상은 신비한 그 무엇이 아니라 물분자 사이의 상호작용이라는 구체적인 현상을 연구함으로써 밝혀낼 수 있는 것이 된다.
덧붙여 환원주의도 지나치게 단순하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Big Think라는 웹진에 실린 "환원주의 대 발현"이라는 글 때문이다. 글 앞부분의 요약문(key takeaways) 중 첫번째 문장을 번역하면 아래와 같다.
"환원주의는 세상의 모든 참된 것은 원자들과 그들의 상호작용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관점이다."
처음부터 이렇게 써놓았으면서도 본문에서는 앞의 '원자들'에만 집중하고 뒤의 '그들의 상호작용'은 철저히 무시한다. 상호작용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통해 발현 현상을 이해하면 되는데 굳이 제목으로 "환원주의 대 발현"이라고 쓴 것이다. 이러니 수십년이 지나도 불필요한 대립과 복잡계에 대한 신화화만 반복되는 게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