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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항현 Jul 07. 2023

평범한 노드들의 네트워크

허브가 전부는 아니다

네트워크 과학의 대가인 바라바시의 책 <네트워크 사이언스>가 얼마 전에 한국어로 번역되었고 나도 역자로 참여했다. 바라바시는 척도 없는 네트워크를 발견하고 이를 이론적으로 이해하는데 커다란 기여를 했다. 여기서 척도가 없다는 말은 원래 '특정한 척도'가 없다는 말이다. 수학적으로 말하자면 네트워크의 이웃수 분포가 거듭제곱 형태를 따른다. 거듭제곱 이웃수 분포를 갖는 네트워크에서는 대부분 노드가 갖는 평균적인 이웃수보다 수백 배에서 수천, 수만 배에 이르는 이웃수를 갖는 노드들이 존재하는데 이들을 허브라고 부른다.


이런 허브가 나타날 수 있는 이유는 이른바 빈익빈 부익부 메커니즘 덕분이다. 남들보다 많은 이웃수를 가진 노드는 그 이웃수에 비례하여 더 많은 이웃을 만들 수 있다. 이를 선호적 연결이라 부른다. 동시에 남들보다 적은 이웃수를 가진 노드는 그만큼 새로운 이웃을 만들 가능성이 줄어든다. 그 결과 네트워크 전체의 이웃수의 표준편차가 평균에 비해 매우 커지게 된다. 여기까지는 새로운 현상을 발견하고 그것을 이해하려는 시도로서 매우 훌륭하다.


하지만 내가 처음 이 내용을 공부했을 때 반감이 들기도 했다. 마치 현실의 불평등을 정당화해주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신진대사 네트워크나 전력망에서 나타나는 거듭제곱 이웃수 분포는 사회의 불평등과는 상관이 없다. 하지만 사회 네트워크의 거듭제곱 이웃수 분포는 개인들 사이의 불평등으로 이해될 소지도 있었다. 그래서 사회물리학에 관심을 갖고 있던 나는 척도 없는 네트워크 연구의 흐름을 따라가기는 하되 적극적으로 연구를 하지는 않았다. 대신 사회과학적인 기반을 가진 네트워크 모형 연구에 더 치중했고 그러다보니 '주류'와 멀어지는 결과를 맞이했다.


어쨌든 나름 고민한 결과 나의 결론은 이렇다. 빈익빈 부익부 메커니즘은 피할 수 없다. 사회를 100%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개인들의 이익 추구 행위도 마찬가지다. 다만 사회가 제도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건 선호적 연결 규칙에 개입하여 그 '선호'를 약화시키거나, 이미 만들어진 네트워크의 결과를 재분배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허브가 나타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허브의 크기를 줄일 수는 있을 것이다. 수학적으로 말하자면 이웃수 분포가 거듭제곱 형태인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이런 개입을 통해 거듭제곱 지수를 크게 만들어 이웃수 분포의 편차를 줄일 수 있다.


상위 1%를 이루는 허브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네트워크의 대부분을 이루는 평범한 노드들이 없다면 허브도 있을 수 없다. 허브가 허브인 이유는 그만큼 많은 이웃을 가지기 때문이고 그 이웃들의 대부분은 평범한 노드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잊지 말자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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