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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속 Mar 29. 2023

경쟁을 거부한다

그러나....

  나는 경쟁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 어딜 가나 나보다 잘난 인간이 존재했다. 동네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뭐든 나보다 뛰어난 이들이 나를 제끼고 내가 원하던걸 먼저 쟁취했다.

  평생 공부로 1등 한번 못해본 나는 자연스럽게 공부를 포기했다. 공부와의 손절?! 은 성급했고 오래도록 후회로 남았지만 이제 와서 뭘 어쩌겠는가. 빠른 손절의 대가는 대입실패로 이어지고 시골 영어학원의 수준미달 강사로 20대를 탕진하게 만들어버린걸. 그 선택엔 가혹한 책임이 따랐다.

  스펙 좋고 잘생긴 존잘남도 내 인생에서 포기했다. 28살의 모태솔로는 비로소 주제파악이 되어 병히를 선택했다. 착하고 성실하고 나만 바라보는 소나무 같았던 그.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소나무 잎이 노랗게 변했다는 슬픈 사연을... 여러분은 앞서 읽어 아시죠? 사시사철 푸른 잎을 기대했건만 병히는 알록달록한 단풍나무였다.

  머리 아픈 경쟁을 이리저리 요리조리 피하고 살다 보니 안착한 곳이 바로 이 자리다. 글로 몇 번 경쟁에 뛰어들어봤지만 결과는 보시다시피..... 그렇게 나는 경쟁을 거부하게 됐다. 그런데 포기가 안 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자식이다. 내 삶은 쉽게 포기하고 쉬운 길만 쏙쏙 골라 걸었는데 두 딸은 달랐다. 냉혹한 경쟁사회에서 남들에게 뻑일정도는 아니더라도 어깨는 쫙 펴고 살길 바랐다. 그래서 학습지며 영어유치원이며 정보를 얻어 좋다는 곳에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보냈다. 남들만큼 남들처럼 남들 못지않게 자녀에게 서포트를 해주고 있다는 뿌듯함도 잠시, 사립대학 등록금에 맞먹는 원이의 교육비를 보며 한 번씩 쎄게 현타가 왔다.

'이게 맞는 건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주변사람들에게 딸을 영어유치원에 보내고 있다고 말하지 못했다. 매스컴에서 비추는 부정적인 이미지도 그렇고 안 그런 척하더니 호박씨를 까며 유난을 떠는 날 향한 매서운 눈빛도 두려웠다.

  가능하다면 사립초를 국제중 진학을 바라는데.... 이 계획이 틀어지면 두 딸을 싱가포르나 캐나다로 유학을 보내는 원대한 꿈을 꾸고 있는데 중요한 건 이 모든  못난 루저 인생을 살아온 온전한 나의 꿈이라는 것이다.

  5살 때부터 영어유치원을 다닌 원이는 일상생활에서도 영어를 썼다. 그런데 그 영어가 좀 이상했다.

"마이 똥 레디" 똥이 마렵다는 뜻이다. "마이 똥 던" 똥을 다 누었단 뜻이다... 콩글리쉬를 쓸 때마다 저걸 배운 건 아닐 텐데 하며 실소가 터졌다. 게다가 저녁을 다 먹으면 "마이 런치 피니쉬드" 외쳤다. 디너라고 알려줬지만 소용없었다. 우리 원이만큼은 미드 속 완벽한 주인공이 되길 바랐는데 왜 자꾸 시트콤을 찍는지.....

   유치원은 내 마음대로 내 욕심껏 골랐는데 이젠 원이를 위해서라도 내려놔야겠다. 내 소중한 딸 원이가 나를 닮아 경쟁을 싫어할지도 모르니까.

(시트콤은 웃프지만 나름 재미가 있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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