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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속 Sep 01. 2023

살벌한 눈치게임

모터 전쟁

  대원 아파트는 유독 수압이 낮아 5층 입주민은 따로 사비를 들여 모터를 달아야 했다. 모터 비용은 삼십만 원이 넘었는데 옆집과 돈을 나누어 기술자를 불러 설치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 옆집과 눈치싸움을 벌여야 했다. 목마른 이가 우물을 판다는 옛말처럼 옆집 언니가 시집갈 때 우리는 오랫동안 고장 나 방치된 모터를 옆집의 주도하에 고쳤다. 모터를 새로 달자 물이 폭포수처럼 뿜어져 나왔는데 그동안 찔끔찔끔 나오던 물에 적응해서였나. 물살에 살갗이 아플 정도였다.

  행복도 잠시, 시원한 물줄기는 5년을 넘기지 못한 채 또다시 모터가 고장 나 버렸다. 눈치싸움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이번에 목마른 이는 우리 집이었다. 내가 결혼 후 엄마는 사위가 불편할까 봐 방치했던 모터를 고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옆집 내외가 비협조적으로 나왔다. 딸이 시집을 가서 외국에 살았기에 옆집 내외는 굳이 돈을 들여 모터를 고칠 만큼 아쉽지 않았던 것이다.

  엄마는 고심 끝에 그냥 모터를 고쳐버렸다. 옆집에 반띵을 요구했지만 심드렁한 아줌마의 반응에 돈 받는 걸 포기해 버렸다. 나는 엄마에게 이젠 절대로 눈치 싸움에서 지지 말라며 이번에 우리 집에서 전액을 지불했으니 다음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옆집이 알아서 고칠 때까지 버텨야 한다고 비장하게 말하자 엄마는 입을 앙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3년의 시간이 더 흘렀다. 보통 5년은 거뜬히 작동했던 모터가 이번엔 3년 만에 고장 나 버렸다. 친정에 아이들을 데리고 갈 때면 찔끔찔끔 나오는 물에 화딱지가 났지만 참았다. 목이 너무 마른데 아쉬운대로 침을 모아 삼키며 참았다. 눈치게임에서 결코 질 수 없으니!

  그러던 어느 날 엄마에게 전화가 와서 받으니 격양된 목소리로,

"옆집 아줌마가 딸이 친정 온다고 모터를 고치자고 하네!!"

  인고의 시간을 기다린 자에게 촉촉한 단비가 쏟아졌다. 오 신이시여. 앞으로 5년은 편안하겠군요! 엄마는 지난번에 우리 집에서 고쳤으니 이번엔 알아서 고치시라고 말하곤 전화를 끊었다며 신나 했다. 다음에 가서 씻을  쏟아지는 세찬 샤워 물줄기에 나를 맡겨봐야지. 오랜만에 친정에서 쾌녀의 샤워를 해보겠구나!

5층에만 있는 물탱크 사다리. 저 안에 눈치게임 모터가 있다. 모터 돌아가는 요란한 소리가 계단을 채우면 5층에서 물을 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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