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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속 Sep 06. 2023

우당탕 도배 대소동

셀프 도배의 늪

  가까운 이웃들이 어쩌다 우리 집에 들르면 곧 이사를 가냐고 물었다. 벽지며 장판까지 손을 전혀 보지 않고 살고 있으니 그럴만했다. 엄마는 웃으며 집을 알아보고 있다고 둘러댔고 그렇게 27년을 중문도 없이 꼬질꼬질한 벽지에 때 묻은 장판을 깔고 지냈다.

  정 많은 이웃들은 도배만 해도 깔끔하니 도배하란 소리를 우리 가족에게 귀에 딱지가 앉게 했다. 그러다 큰 결심을 한 듯 엄마가 오늘 학교 끝나고 같이 시장에 가서 벽지와 풀을 사 오자는 것이 아닌가! 고등학교 1학년에 막 접어든 시기라 시간적 여유가 있어 신나게 엄마손을 잡고 시장으로 향했다.

  요란한 벽지와 장판을 전시해 놓은 상점으로 들어섰다. 26평 집을 전체 도배할 계획인데 벽지와 풀을 얼마나 사야 하냐 사장님께 물으니 직접 하냐고 되묻었다. 엄마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저씨는 의심쩍은 눈빛으로 고개를 갸웃하며 사람을 쓰지 왜 직접 하냐 물었고 엄마는 멋쩍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때 엄마를 말렸어야 했다.

  덜덜이 카트 가득 벽지와 풀, 도배용 칼과 붓을 싣고 끌고 왔다. 엄마는 지속이 네가 잘 도와주면 이깟 도배는 식은 죽 먹기라며 자신만만했다. 그때 엄마를 말렸어야 했다.

  살면서 전체 도배를 한다는 것은 큰 가구도 옮기고 벽지도 재단해야 하고 손이 이만저만 가는 것이 아니었다. 엄마는 제일 작은 남동생 방의 한쪽 벽면을 도배하곤 힘드니 내일 다시 하자며 일을 물렸다. 그때라도 엄마를 말릴걸...

  하교 후 같이 놀자는 친구에게 오일 연속으로 집 도배 때문에 안된다고 거절하자 친구가 놀라 물었다.

"너희 집 백평정도야? 얼마나 크길래 일주일 내내 도배를 해?!"

  그날은 집으로 돌아와 가방을 바닥에 내팽개치며 친구가 한 말을 엄마에게 고대로 전했다. 이제 더는 못하겠다고 파업을 선언했다. 일주일 넘게 도배 풀냄새를 맡으니 제정신이 아니었다. 엄마는 나까지 외면하자 축 처진 어깨로 크게 한숨을 쉬었다. 바쁜 아빠가 도울까? 처먹는 것만 잘하는 동생이 도울까? 엄마에게 냅다 내지르곤 마음이 약해져 울며 겨자 먹기로 벽지에 풀을 발랐다.    

  거짓말도 과장도 없이 자그마치 보름이 걸렸다. 전체 도배를 완성한 날 엄마와 나는 거실에서 춤을 췄다.  바탕 댄스타임으로 숨이 차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엄마에게 정중히 부탁했다. 이제 다신 절대로 셀프 도배는 하지 말자고!!

오랜 시간이 흐르고 엄마에게 보름이 걸렸던 도배 대소동 이야기를 꺼내자 몰랐던 사실을 알려줬다. 일당 12만 원, 적어도 두 사람을 써야 한단 사실에 돈이 없어 할 수 없었다고. 그 당시 엄마가 원망스러웠지만 가장 고생을 많이 한건 엄마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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