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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속 Sep 09. 2023

집에 어른 없어요!

가난한 집을 터는 가난한 도둑

  대원 아파트 인근에 고층 대형 아파트들이 즐비하게 생겨났다. 시골 읍에서 돈 좀 있다는 사람들이 머물러서 그런가 경비가 삼엄했다. 입주민이 아니면 놀이터에서 노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한 번씩 그곳에 사는 친구 찬스를 쓰긴 했지만 눈치가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으리으리한 아파트를 두고 좀도둑은 늘 대원 아파트를 털었다. 뭐 훔쳐갈 게 있다고 터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빠는 돈이나 물건은 얼마든지 훔쳐가도 되지만 혹여나 오후 내내 집에 있는 가족들이 봉변을 당할까 봐 걱정이 컸다.

  문을 잠그지 않고 지내던 우리 집은 이중걸쇠까지 달았다. 아빠가 모르는 이에겐 절대 문을 열어주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여 집안에 부모님이 없을 땐 누구에게든 절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집에 어른 없어요!"

외치면 잡상인이든 이웃이든 '그러니 알겠다'하며 더는 벨을 누르지 않았다. 초등학생을 거쳐 중고등학생 심지어 성인이 됐을 때도 집에 혼자 있을 때는 '어른 없어요'를 외쳤다. 습관이 되어 버린 것이다.

  서른을 앞둔 봐도 장성한 어른의 모습을 갖춘 시기에 울리는 초인종에 버릇처럼 어른 없어요를 외쳤다.

  "지속이니? 402호 아줌마야. 엄마가 주문한 고구마 가져왔어."

  ".........."

나는 몹시 민망해하며 문을 열었다. 아줌마는 네가 어른인데 왜 집에 어른이 없니? 하며 웃었고  머쓱함에 얼굴이 붉어졌다.

   초인종이 울리면 외시경으로 얼굴을 확인한  최선을 다해 혀 짧은 소리로 "어른 없떠요!"를 외쳤다. 스스로가 한심하고 오글거렸지만 문을 안 열면 그만 아닌가. 402호 아줌마가 나에게 큰 깨달음을 준 것이다.

가난한 아파트를 터는 가난한 좀도둑은 대원아파트가 방범용 cctv를 달자 종적을 감췄다.

  남동생과 단둘이 있는데 잡상인이 문을 두드렸다. 내가 혀 짧은 소리로 "어른 없떠요" 외치자 날 한심하게 쳐다보던 동생.... 내 나이 32살의 어느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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