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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속 Sep 12. 2023

대원의 지하층

절대열쇠는 누구의 손에?

   요즘 아파트 지하엔 주차장이 있지만 대원 아파트 지하엔 주거공간이 있었다. 우리 가족이 막 이사를 왔을 때 지하 열쇠는 부녀회장이 쥐고 있었는데 아무도 살지 않는 지하층은 아파트 소유가 되어 창고로 유용하게 쓰였다.

  열쇠는 B105호와 B106호 단 두 개뿐으로 주로 아파트에서 가장 오래 산 입주민에게 맡겨졌다.

이사를 막 온 우리 가족은 지하실에 지분이 전혀 없는 풋내기였지만 엄마는 한 번씩 5층까지 들고 오기 무거운 짐을 지하에 두고 싶어 했다. 

  지하실 열쇠를 얻는 방법은 단 하나 존버였다. 그렇게 27년을 버티다 보니 드디어 열쇠가 엄마의 손아귀에 들어왔다. 엄마는 요란한 키링에 우리 집 현관문 열쇠와 B105호, B106호 열쇠를 주렁주렁 매달고 다녔다. 왕관의 무게쯤이야 열쇠 꾸러미가 묵직했는데도 엄마는 늘 기꺼이 꾸러미를 들고 다녔다.

  지하실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곧 그곳을 사용할 때 엄마의 허락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이웃들은 엄마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연락했고 엄마는 틈만 나면 지하실에 내려가 상태를 살폈다. 마치 우리 집이 한채 더 생긴 기분이었다.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면 참 아름다웠겠지만 문제가 생겼다. 지하실에 넣어둔 짐들이 야금야금 사라진 것이다. 시작은 새로 산 캐리어였다. 연둣빛의 기내용 캐리어로 예뻤다. 엄마에게 내가 선물했는데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지하실에 고이 모셔둔 채 심지어 열쇠까지 쥐고 있던 엄마는 대혼란에 빠졌다.

  나는 그걸 누가 훔쳐가냐고 우리 이웃 중에 그런 사람은 없다고 호언장담하며 엄마의 기억력을 탓했다. 억울했던 엄마는 미끼를 던졌다. 바로 국내산 태양초로 만든, 돈 주고도 구하기 힘든 수제 고추장 한통을 지하실에 둔 것이다. 우리 집 고추장 맛은 온 동네 사람들이 알아줬기에 지하실의 모든 창문을 잠그고 하루에도 열두 번씩 엄마는 지하를 왔다 갔다 했다.

  삼일이 지나고 여전히 자리보전 중인 고추장 통을 보며 엄마는 그럼 그렇지 누가 훔쳐가겠나 지하실 방문이 뜸했고 이틀뒤 고추장은 사라져 버렸다. 열린 창문도 문을 뜯은 흔적도 없었다. 설마 단 두 개라고 철석같이 믿은 열쇠가 더 있었나?! 연둣빛 기내용 캐리어와 고추장은 어디로 간 걸까. 엄마와 나는 이웃에게 소소한 선물을 한 것으로 여기며 이 사건을 더는 키우지 않았다.

  절대반지를 잇는 절대열쇠, 대원의 곳간 키를 남몰래 가지고 있는 이는 누굴까. 아직도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가 대원 아파트 지하전설처럼 존재한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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