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부터 뜨개질에 심취했다. 유튜브로 겉뜨기와 안뜨기를 독학으로 배워 어찌어찌 목도리 하나를 완성하니 성취감이 몰려왔다. 얼마 만에 해보는 생산적인 일이던가.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동시에 완성된 목도리를 바라보면 참 흐뭇했다.
그래서 뜨개질에 미친자가 되어 하루종일 몇 날며칠을 뜨개질만 했다. 알록달록 털실로 우리 두 딸의 목도리를 완성하고 베이지색 털실로는 병히의 목도리를 떴다. 아빠, 엄마 목도리도 뜨고 나의 쁘띠 목도리까지 뜨고 나니 더는 떠줄 이가 생각나지 않았다. 흠.. 가만 보자 남은 털실이 아까운데 어쩌지. 고민하다가 시어머니를 떠올렸다. 아이들 목도리를 뜨고 남은 실로 시어머니 것을 만들어 작년 가을에 선물로 드렸다.
이걸 만들었냐며 예쁘네 하시곤 둘러보지도 않고 치우길래 장롱에 처박아 두겠구나 씁쓸했다. 차라리 내가 딸들과 커플로 할 걸 후회도 살짝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겨울이 되었다. 두 딸은 내가 부러 목도리를 둘러주니 여러 번 하고 다녔고 병히는 한다 하겠다 하더니 한 번을 하고 다니지 않았다. 시어머니도 명품 스카프는 하고 다니면서 내가 선물한 목도리는 안 하시기에 하긴 남편도 안 하는데 섭섭해하지 말자며 마음을 다독였다.
어제 시아버지 생신으로 가족 식사모임을 가졌는데 원이가 어머니를 보자마자
"우리 엄마가 만든 목도리다. 나도 있는데!"
하길래 보니, 시어머니가 알록달록한 목도리를 어울리지도 않는 옷에 두르고 있었다. 일부러 하고 나온 느낌이 팍팍 들었는데 알록달록한 목도리가 시어머니의 옷에서 겉돌았기 때문이다.
패션을 포기하고 붕 뜬 목도리를 하고 나온 어머니에게 어제 참 감사했다. 어머니는 원이와 진이에게 너희도 똑같은 목도리 있잖아. 다음에 하고 나와. 할머니와 커플 하자며 웃어 보였다.
매년 생신은 집에서 차려 먹었는데 올해는 외식을 하자며 어머니가 예약까지 하여 덕분에 고생 안 하고 뷔페 음식을 편히 먹으며 나도 시아버지 생신을 즐길 수 있었다.
꾸역꾸역 두른 목도리를 보며 어머니도 노력을 하시는구나. 이렇게 진짜 가족이 되어가나 보다. 근데 병히 목도리는 다시 뺏어와야겠다. 핸드메이드 하이 명품을 두를 자격이 없으니!!
올해는 뜨개질을 전혀 하지 못했다. 꽂혀서 하루 일곱 시간씩 뜨개질을 하다 보니 오른손 새끼손가락 관절이 퉁퉁 붓고 저려서.. 하얀 재가되도록 불태운 뜨개질은 휴식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