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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속 Mar 04. 2024

윗물보다 맑은 아랫물

너에게 늘 배운다

  태생이 착한 우리 딸 원이는 야경증과 짧은 입으로 유아기 때 날 그렇게 고생시키더니 자라면서 거저 키우는 딸이 되었다. 기질이 순하고 똘똘한 딸아이. 언어적으로 빠르고 책도 좋아해 작년부터는 부쩍 사람대사람으로 대화가 되기 시작했다.

  얼마 전 친정에 다녀왔는데 엄마가 밤에 원이를 데리고 자기 전 나눈 대화를 전해줬다. 원이가,

"할머니는 요즘 아픈데 없어?"

"잇몸이 좀 아픈데 괜찮아."

"그럼 치과를 가야지. 치과 하나도 안 무서워. 내가 두 번 가봤잖아. 할머니도 용기 내서 다녀와. 아프면 안 돼."

엄마는 원이가 큰애처럼 자기에게 겁내지 말라고 달래줬다며 아들 딸도 안 묻는 안부를 어린 손녀가 물어 눈물이 핑 돌았다고 했다. 냉정한 너한테 어쩜 이렇게 인정 많고 야무진 딸이 나왔는지 의문이란 말도 덧붙이며.....

  엄마와 전화를 끊고 우리 원이에게 참 고마웠다. 욕심 많고 우악스러운 진이에게 머리채를 뜯기면서도 동생을 한 번도 때리거나 밀치지 않는 아이. 혼난 뒤엔 먼저 다가와 속상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아이. 안된다고 하면 조르지 않는 아이. 좀 애 같아도 되는데 벌써 맏딸 티가 나는 원이를 보며 고맙고 미안했다.

  어젯밤 자기 전 원이에게 고백했다. 진이보다 널 더 사랑한다고. 이미 알고 있었다고 말해주는 딸을 꽉 안아주었다. 원이의 품에서는 기분좋은 달큰한 향기가 났다.

  내가 가장 행복한 시간은 두 딸 사이에 누워 아이들을 재우는 순간이다. 품 안의 자식이라지만 엄마 품은 앞으로 죽을 때까지 24시간, 사시사철 열려있으니, 허리굽은 할머니가 되어도 두 팔 활짝 벌려 꽉 안아주겠다고 되뇌다 잠이 들었다.

  복 중에 복은 자식복이 아닐까? 이 깊은 사랑이 집착이 되지 않게 정신 바짝 차리고 사랑해야겠다. 혼탁한 윗물이 병히라는 필터를 만나 맑고 고운 두 딸을 두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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