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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속 Jun 15. 2024

사모님을 만나다

  170센티가 넘는 훤칠한 키. 긴 목선에서 빛나는 티파니 다이아 목걸이와 방금 세팅을 마친 듯 풍성한 머리숱.  빌런이 이토록 매력적이라면 곁에 둘만하지 않나 그녀는 도준맘의 모습을 떠올리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도준맘은 이혼전문 변호사 남편을 둔 사모님으로 바이올린을 전공한 재원이었다. 주변에 음대를 나온 이가 없었기에 그녀는 음대출신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그리고 도준맘은 그 환상에 완벽히 부응하는 인물이었다.

  등원할 때 도준맘은 모두에게 활짝 웃으며 상냥한 인사를 건넸지만 딱 그뿐이었다. 인간적으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그녀도 그동안은 다른 학부모에게 무관심했다.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사람들. 친해져 봤자 시댁욕을 하거나 돈자랑이나 해대겠지.

  생산적이지 못한 인간관계는 맺지 않는 그녀건만 도준맘은 달랐다. 그녀는 자신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모님이 궁금했다.

  "집이 누추하지만 괜찮으면 커피 한잔 드시러 오세요."

그녀는 용기를 내어 말문을 열었다.

  "커피머신 있으세요?"

 상상치 못한 대답이 신선했다. 가정용 머신이나 마실만 할 거라 대답하자 도준맘이 초대에 응했다.

  그녀가 사모님을 집으로 초대한 선빵이었다. 사내들의 주먹질처럼 여자들의 세계엔 눈에 보이지 않는 치열한 눈치싸움이 존재했다. 그녀가 사는 아파트의 앞동은 80평대 이상의 초대형평수로 지역에서 알아주는 유지들이 자리를 잡은 곳이었지만 뒷동 상황은 달랐다. 한 동은 삼십 평대였고 남은 한 동은 그녀가 거주하는 사십 평대였다.

  아침 등원길에 자신과는 반대 반향에서 오는 학부모들을 보며 첫날 그녀의 기가 팍 죽었다. 아무래도 모두가 앞동에 사는 사모님들 같았기에. 그러던 어느 날 의도적인 건 절대 아니었으나, 사모님들의 뒤를 멀찍이 따라가게 됐고 그들이 우르르 제일 작은 평수의 동으로 들어가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의사 사모님도 변호사 사모님도 그녀보다 좁은 평수에 산다니. 그녀는 순간 그들을 집으로 초대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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