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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린 Jan 25. 2024

ep5. 생리현상,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 주의 : 어쩌면 거북할 수 있습니다. 비위가 약하신 분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솔직히 이런 말 하기 부끄럽다.

하지만 나를 나답게 하는 결혼생활에 있어서 이것은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란 말이야.

그러니 내 얘기를 좀 들어봐 주오.


나라는 인간은 어쩌면 생각보다도 본능에 충실하며 때론 원초적이어서 생리욕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도 모르겠다.

살면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인간의 기본욕구 : 생존, 사랑과 소속감, 힘과 성취, 자유, 즐거움.

이 다섯 가지 모두를 만족시켜 주는 궁극의 그 무엇이 바로 결혼생활일 텐데 그중 가장 근본이 되는 생리현상을 어찌 참아내랴.


부부끼리는 물론이고 연애 때부터 방귀, 트림 등의 생리현상을 내외하며 지낸다는 사람이 있으나 난 절대 불가하다.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내외를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한다는 점이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진행되는 걸. 내가 무슨 수로 그것들을 틀어막을 수 있겠나.

나는 그저 한낱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인간에 불과한 것을.


이따금 우리 부부가 소파에 나란히 앉아 편한 자세로 TV라도 보고 있노라면,

어느 순간 내 엉덩이에서 참을 새도 없이 방귀가 뿡뿡 나올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애꿎은 우리 집 냥선생이 (코숏, 4세 / 이름은 김베리) 종종 나 대신 억울함을 뒤집어쓰기도 한다.

방귀는 내가 뀌어놓고 얌전히 자고 있던 냥선생을 쳐다보며 "김베리! 또 방구꼈어?" 하는 것이지. (베리둥절한 상황)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으나 내 짝꿍은 방귀소리도 귀엽게 여겨준다.

그러나 귀엽게 봐준다 했지, 안 놀린다고 한 적은 없다.


최근 일이다.

그날은 퇴근 전부터 배가 너무너무 아팠다.

콕콕 쑤시는 느낌이 예사가 아니었는지라 집에 가서는 씻지도 못하고 옷만 갈아입은 채로 바로 누워야 했다.

한참을 끙끙 앓아대며 뒹굴거리다... 침대 녀석이 안락함을 뛰어넘어 소화라도 잘 되게 도와주는 것인지 갑자기 배가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더니 곧이어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다.

뿌와아아아앙악!!!

이게 정녕 사람의 몸속에서 나는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평소 뀌는 방귀가 그냥 커피라면 이건 T.O.P랄까.


고것이 얼마나 큰 소리였는지 평소 잠귀 어둡기로 유명한 남자친구가 벌떡 일어나 깰 정도.

내가 퇴근도 하기 훨씬 전부터 침대에 곤히 잠들어있던 그가 날벼락이라도 맞은 듯 비몽사몽 한 채로 내게 말했다.


"뭐야...? 자기야, 큰일 난 거 아냐?"


거기 까진 괜찮았다. 근데


"… 자기 팬티 빵꾸 뚫린거 아니야?!“


라고 하는 게 아닌가. 하... 단번에 방귀소리인 걸 안 게지.

놀림도 듣다 듣다 이런 말까지 듣는구나 싶어서 그 순간 정말 온갖 감정이 밀려왔다.

민망하기도. 속상하기도, 어이가 없기도, 웃기기도.

나는 최대한 머리를 굴려 아무렇지 않은 척 이렇게 말했다.


"꿈꿨어? 잠꼬대 그만하고 자."


근처에 냥선생이 없으니 뒤집어 씌울 존재가 없는 탓이었다.

가끔씩 잠꼬대로 대화도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잠꼬대가 심한 짝꿍을 이용해 은근슬쩍 넘어가려는 심산이었으나 아쉽게도 상대 역시 마냥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다.


"잠꼬대래, 크크. 잠꼬대 아닌데. 소리가 엄청 큰데? 자다가 깼잖아. 푸흡."


"아 그냥 모른 척해주지~~ 왜 놀려~~"


"크크크. 배 아픈 건 이제 괜찮아졌어?"


흥. 병 주고 약 주는지 놀려먹다가도 걱정은 해준다.

뭐, 부부란 그런 게 아니겠나,

참을 수 없는 그 가벼움 위로 서로의 장건강을 염려하는 것.


다음 날에도 짝꿍은 간밤에 있었던 일을 꺼내며 나를 뿡빵이라 놀려댔다.

칫, 그러는 자기는. 자기도 뿡뿡이면서.

부부는 닮아간다더니 처음엔 생리현상을 내외하던 짝꿍도 어느새 나를 닮아 부끄럼 없는 뿡뿡이가 되었다.

어느 날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주거니 받거니 하며 화음을 쌓기도 하니까. 크크.

누군가는 이런 광경을 보며 눈살을 찌푸릴 수도 있겠으나, 어쩔 수 없다.

방귀 소리가 큰 것도 나인걸 어떡해.

이런 나를 귀여워해주는 짝꿍과 또 짝꿍의 방귀 냄새마저 기꺼이 사랑하는 내가 만나 부부가 되었으니 잘 된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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