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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린 Jan 24. 2024

ep4. 청첩장 문구

가훈으로 길이길이 기억되리

敬愛和樂
경애화락

서로 존경하며 사랑하고
화합하여 즐겁게 살아가겠습니다.
저희의 시작하는 모습을
여러분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위 글은 우리 종이 청첩장에 쓰여진 문구이다.

꽤나 간결하게 적힌 편인데 오늘은 어쩌다 이 문구가 탄생했는지에 대해 얘기해 보련다.


인생 3N년차, 수많은 청첩장을 받아본 나지만 그 가운데 뇌리에 남는 인사말은 사실... 없다.


서로의 가치관, 종교색을 담은 문구.

연애기간이나 만나게 된 계기를 잘 녹여낸 글.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어른들을 초대하는 말.

결혼하는 계절에 걸맞은 표현.

어디선가 본 듯한 명대사나 책의 한 구절.  

혹은 이름으로 재치 있게 지은 사행시.

등등.


사람 따라 취향 따라 다양한 초대글이 있다.

안 그래도 결정해야 할 게 산더미 같은 결혼준비에서 청첩장 문구에 큰 힘을 쏟아야 할까?

딱히 그러고 싶지 않다면 그냥 청첩장 업체에서 기본으로 제공되는 글만 선택해도 충분하겠지.


그. 러. 나. 나는 나잖아.

나름 글에 진심이기 때문에, 또한 의미 부여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겐 한 번 쓱 보고 버려지는 종이일 뿐이라 해도 적어도 내게는 평생 기억에 남을 만한 문구였으면 해서 오랜 고민을 했다.

무엇이던 간결할수록 기억에 오래 남는 법.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다 이마를 탁 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으니, 바로 가훈을 적어보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다.


평소 가훈을 정해 냉장고 앞에 떡하니 붙여두고 오며 가며 볼 때마다 마음속에 되새기며 살자고 다짐했던 바 있기에,

예쁜 청첩장을 펼쳐 딱 붙여두면 금상첨화일 것 같았다.


그럼 가훈부터 정해야겠네?

서둘러 뜻이 좋은 사자성어를 찾아봤다.


몇 가지 후보가 있었지만 고심 끝에 고른 것은 경애화락.

敬愛和樂

'경애화락'이란 말은 경애 = 공경하고 사랑함, 화락 = 화평하고 즐거움 을 합쳐 만든 사자성어이다.

부부에게 적용해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며 화목하여 즐겁게 살아가겠다는 뜻으로, 더할 나위 없이 의미가 좋기도 하고, 예쁜 미사여구로 채우는 청첩장에 딱 알맞다 생각이 들어 골랐다.


경애화락 뒤로 이어지는 글 또한 초대문구 치고는 제법 간결하다 느껴질 텐데,

이 역시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결혼식에 초대하는 말로는 뭐가 좋을까... 고민하다가 내가 직접 지어봤다.

언제나 심플 이즈 베스트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희의 시작하는 모습을 여러분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한 문장으로 끝.

(바쁘신 와중에도 귀한 걸음 하시어 축복해 주신다면 저희에게 더없는 기쁨이겠습니다. 는 과감히 생략ㅎㅎ)


이렇게 탄생한 나의 청첩장.

이것을 들고 이제 소중한 분들을 찾아뵙고 전달드리는 일만이 남았다.


초대합니다. 저의 결혼식에.

부디 오셔서 시작하는 모습을 함께 지켜봐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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